13년 동안 실패한 제4 이통사, '한국판 라쿠텐' 실현될까…정부는 '기업 순회 만남' 준비

입력
2023.0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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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롯데·신세계 등 유통 기업들 후보로 언급
기존 사업과 시너지·튼튼한 자본력 핵심
日 제4 통신사 라쿠텐 모바일 사례 주목
정부, 기업 순회 미팅 및 주파수 가격 인하 검토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 주범으로 '통신비'를 지목하면서 정부의 제4 이동통신사 유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 시장 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제4 이통사를 시장에 진입시켜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시장 지배력을 깨뜨리라는 지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들은 제4 통신사 진입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순회하며 '일대일 세일즈'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와 업계는 제4 이통사 사례로 일본의 라쿠텐 모바일을 주목하고 있다. 라쿠텐 모바일은 일본 인터넷 기업 라쿠텐이 세운 통신 자회사다. 네이버, 카카오,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제4 이통사 후보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한국판 라쿠텐 모바일'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제4 이통사 라쿠텐 모바일 모델 주목"



1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라쿠텐 모바일 모델의 핵심은 ①통신 서비스와 기존 사업과 시너지 ②튼튼한 자본력이다. 우선 라쿠텐 모바일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자. 이 회사는 일본의 인터넷 유통회사 중 한 곳인 라쿠텐이 2018년에 세웠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오랫동안 통신3사가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유지했지만 라쿠텐이 뛰어들면서 4자 구도가 만들어졌다.

라쿠텐은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업을 했지만 현재는 일본 전역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수준까지 커졌다. 라쿠텐이 독과점적 통신시장에서 지금처럼 자리 잡은 배경은 기존 유통 사업에 통신서비스 결합이 쉬웠고,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송병호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통신시장 같은 과점 시장에선 서비스 가격은 비싸지고 질은 떨어진다"며 "기업 간 경쟁을 활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통신시장을 흔들 방책으로 메기를 풀 필요가 있다"고 힘을 보탰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제4 이통사는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과 얼마나 잘 융합할 수 있을지와 자금력이 관건"이라며 "정부도 라쿠텐 모바일 모델을 제4 이통사의 좋은 사례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 유통·금융사 주목"



쿠팡, 신세계, 롯데와 같은 유통기업과 금융사들이 제4 이통사로 주목받는 이유 역시 라쿠텐 모바일처럼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①쿠팡은 물건을 쌓아 놓는 '물류창고(풀필먼트)' 데이터 관리와 전산처리에 5G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적용할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도 하는 만큼 고화질 영상 전송에 해당 주파수를 쓸 수 있다.

②신세계는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과 함께 야구단 SSG 랜더스가 통신시장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이유로 꼽힌다. 이 구단은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가 보유하고 있는데 홈구장 '인천 SSG 랜더스필드'는 2만7,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수만 명 관중이 모인 곳에서 28㎓ 주파수를 적용하면 경기 보면서 무리 없이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8㎓ 초기 사업 모델은 야구장이나 공연장, 도서관같이 특정 장소 안에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롯데는 최근 롯데정보통신을 중심으로 '아이돌 메타버스 콘서트' 등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어 통신시장 진입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주요 금융사들은 방대한 고객데이터 관리에 28㎓ 주파수 활용도가 높다. 특히 최근 KB국민은행과 토스가 각각 리브엠과 토스 모바일이라는 브랜드로 알뜰폰 시장에 들어간 만큼 관련 사업과 연계성도 크다. 다만 아직까지 제4 이통사 후보로 이름이 나오는 기업들은 모두 사업 진출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제4 이통사의 자본력도 중요하다. 정부가 초기 시장 진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정책금융 기관을 통해 초기 투자 비용 4,000억 원을 돕는 등 당근책을 마련했지만,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선 장기적으로도 큰돈이 필요하다. 라쿠텐 모바일도 라쿠텐이라는 뒷배경을 발판 삼아 독과점 시장을 뚫고 들어갔다.



13년 동안 실패한 제4 이통사…정부 '기업 순회'



정부는 제4 이통사 유치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4 이통사 논의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11월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도전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KMI는 2011년 2월에도 신청서를 냈지만 역시 허가를 얻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도 KMI와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불승인 결정을 받았다.

2014년 2월 KMI와 IST의 주파수 할당 포기 이후 차갑게 식었던 제4 이통사 논의는 퀀텀모바일과 세종모바일, K모바일 등이 경쟁에 뛰어들며 다시 불붙었다. 하지만 이 역시 2016년 1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13년 동안 이어져 온 제4 이통사 논의를 이번만큼은 성공시키겠단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우선적으로 준비되는 방안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미팅'과 '그룹별 미팅'이다.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제4 이통사 진입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 관련 정책 순회 설명회를 준비 중이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특정 사업장이나 소규모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5G 통신망을 구축해 사용하는 '이음5G 서비스'를 내놓을 때도 20여 개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업을 설명했다. 현재는 네이버클라우드와 LG CNS, SK네트웍스서비스,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이음5G 사업을 운용 중이다.

정부는 이 외에도 제4 이통사에 할당할 주파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8㎓ 주파수 대역 3년 독점 이용권과 통신설비 지원책도 마련해뒀다. 정부는 제4 이통사 진출을 바라는 기업이 등장하기까진 1년~1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제4 이통사 유치 정책이 실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안형택 동국대 교수"통신시장은 초기 투자 비용과 서비스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사업자를 유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몇 차례 제4 이통사 유치를 위한 당근책이 나왔음에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4 이통사 유치보다는 정부가 통신사 요금제 설계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또 일부에선 제4 이통사 후보군이 모두 대기업인 만큼 자칫 통신시장 지형 변화가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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