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종방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은행 4년 차 주임인 수영(문가영)은 다른 직원들과 다른 색의 사원증을 걸고 예금 창구에서 손님을 맞는다. 같은 정규직 동료들의 사원증 줄은 모두 파란색인데 그의 것만 노랗다. 안수영은 고졸 출신이다. 자본주의가 꽃피는 은행에서 직원의 계급은 색깔로 나뉜다. "촬영하면서 계급적 차별을 마주하는데 외딴 섬이 된 기분이었어요. (드라마) 작가님이 대본을 쓰기 전 실제 직장인들을 만났고 그 얘길 들었는데 현실은 더하더라고요." 최근 서울 강남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문가영(27)의 말이다.
'사랑의 이해'의 원작인 동명 소설 표지엔 한글 제목 옆에 '理解'와 '利害'란 두 한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익과 손해 즉 이해(利害) 안에 갇힌 청춘의 사랑은 시종일관 어둡고 쓰디 쓰다. 같은 지점 대졸 출신 직원 상수(유연석)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상대의 현실적 조건에 머뭇거린다. 이를 눈치챈 수영은 상수를 향한 마음을 접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 밑에서 자라 삶의 무게를 아는 수영이 찾은 해방구는 자신을 둘러싼 인간 관계를 산산이 부수는 일이다. 수영은 취업 절벽에 내몰려 모든 관계를 포기하는 'n포 세대'의 또 다른 자화상 같다. 문가영은 "우리의 모든 선택은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된다"며 "수영의 선택지가 자기파괴적인 건 그의 환경 탓이고 그가 그렇게 살며 배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의 사랑을 혹독하지만 사실적으로 그려낸 덕분일까. 마니아층을 양산한 '사랑의 이해'는 12일 기준 넷플릭스에서 '피지컬 100' 등을 제치고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사는 게 꼭 이거 같아서요. 동그라미,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도는 징그럽게 그 자리에 고인 동그라미 같은 인생". 버스정류장에서 상수를 만난 수영은 버스노선도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사는 수영을 표현하기 위해 문가영은 "표정을 감추고 연기하려 노력"했다. "수영이 참는 데 익숙하고 내색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는 촬영하며 눈물이 쏟아질 땐 그 눈물을 닦고 다시 촬영했다. 문가영은 "'힘들다'란 말을 못 하고 자신에게 가혹한 수영의 모습은 나와 닮았다"며 "수영의 들뜨지 않고 낮고 느린 말투도 내 평소 말투"라고 말했다. 구김살 없이 늘 밝아보였던 아역 출신 배우가 알려준 그의 뒷모습이다.
문가영은 2006년 영화 '스승의 은혜'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열네 살 때였다. 그 뒤 문가영은 한 해도 쉬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를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바쁘게 '어른'이 된 그는 "'난 상처 회복이 빠른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며" 스스로를 지켰다.
그런 그는 왼쪽 어깨 아래 시조새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 문가영은 "엄마가 태몽에서 하늘을 나는 금빛 시조새를 봤다더라"며 "끊임없는 부활의 뜻을 담아 불사조 느낌의 이미지를 섞어 몸에 새겼다"고 했다. 지난 연말에 드라마 촬영을 끝낸 그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쿤데라의 전집을 모두 읽는 게 다독가로 알려진 배우가 세운 올해 목표다. 문가영은 "전 수영이와 달리 사랑에 용기를 내는 편이고 때론 내 마음을 먼저 보여주고 최선을 다한다"며 "그런데 '사랑의 이해'를 찍고 우연히 MBTI(성격유형검사)를 다시 했더니 애초 외향적인 ENTJ에서 내향적인 INTJ로 나오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