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물가와 경기를 함께 신경 써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 자리에서 털어놓은 고민이다. 올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 수렁에 빠지리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국내외 기관 대다수가 1%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팔짱을 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시중에 돈이 풀려야 경기가 살아날 텐데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금리를 내릴 수도, 재정을 투입할 수도 없다.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해지면 모든 정책 기조를 경기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추 부총리 말에는 하루빨리 그러고 싶지만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아 초조한 심경이 배어나온다.
일단 끌어내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현재 5%대 물가 상승률이 상반기 내 4%대로 내려오고 하반기에는 3%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유지해 오고 있는 ‘상고하저’론이다.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악재가 수두룩하다.
최대 난제는 공공요금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초래된 세계적 원자재 공급 위기에도 지금껏 공공요금이 급등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억지로 눌러놨기 때문이다.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요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른 분위기다.
실제 다시 폭을 키운 올 1월 물가 상승의 핵심 요인은 전기요금 인상이었다. 가스요금은 정부에 의해 붙잡혀 있지만, 산하 에너지 공기업 적자를 방관할 입장이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연일 전기ㆍ가스요금 인상 불가피론을 설파 중이다.
올 초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발 요금 인상도 상방 압력이다. 이미 대구시와 서울시가 지난달과 이달 잇달아 중형택시 기본요금을 올렸고, 3월에는 경기도가 대기 중이다. 서울시는 4월을 목표로 지하철ㆍ버스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재화와 서비스 가격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공공요금 상승은 정부의 골칫거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올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을 올려 잡은 것(3.3→3.4%)도 이런 파급 효과를 고려해서였다.
정부가 더 조바심이 나는 것은 수치 하락이 전부가 아니어서다. 다시 치솟지 못하도록 물가를 주저앉혔다 싶어야 정책 기조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2일 본보에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등 글로벌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만큼 단순히 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고 경기 대응 쪽으로 방향을 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발 글로벌 수요 확대가 국제 원자재 가격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가 안정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최근 기재부와 행정안전부가 지자체를 상대로 요금 인상을 당분간 미뤄 달라고 회유ㆍ압박에 나선 배경이다. 2분기 인상을 염두에 두고 1분기에 동결했던 가스요금도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인상을 강행할지 알 수 없다. 기재부가 망설이고 있다. 추 부총리가 누차 못 박은 대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경기 대응에 착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자 개선보다 당장 물가 안정에 우선순위를 둘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