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보톡스 전쟁'으로 불리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국내 첫 판결이 나오면서 보톡스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높다. 전 세계 보톡스 시장은 올해 7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제약업계의 '격전지'로, 업계에서는 앞으로 남은 법원의 결정으로 국내 보톡스 시장 순위는 물론 대웅제약의 미국 수출이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판매를 맡은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민사 1심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나보타를) 제조·상업화하기로 메디톡스 측과 합의했다"고 13일 밝혔다. 법원이 10일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개발됐다"고 판결하며 미국 시장 판매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생산과 수출, 해외 판매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는 지난해 북미에서 1,840억 원어치를 판 효자 제품이다.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에 따라 문제의 균주를 활용해 만든 보톡스 완제품을 없애고 메디톡스에 균주를 넘겨야 한다. 메디톡스에 400억 원도 줘야 한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판결문을 받는 즉시 완제품 폐기와 균주 반납 명령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며 "전례를 볼 때 긴급한 손해가 인정되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웅제약이 미국 판매에 문제없을 것이라 자신하는 근거는 2021년 2월 맺은 합의다. 당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최종 판결에서 메디톡스가 이기며 나보타는 21개월 동안 미국에서 수입금지 명령을 받았는데 사흘 만에 메디톡스와 메디톡스의 파트너사 앨러간(현 애브비), 대웅제약의 파트너사인 에볼루스 간 '3자 합의'가 이뤄졌다. 에볼루스는 나보타를 미국에서 판매·유통할 권리를 얻은 대신 합의금과 로열티를 메디톡스와 앨러간에 주기로 했다.
문제는 대웅제약의 수출 여부가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법원이 문제의 균주를 활용해서 보톡스를 만들지 말라고 한 상황에서 대웅제약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나보타의 생산이 어려워지고 5조 원 규모 미국 시장 판매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보톡스 만드는 한국 제약사 중 유일하게 미국에 진출했다"며 "국내 시장보다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 보톡스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보톡스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 밑바탕에도 이런 전망이 깔려 있다. 메디톡스가 국내에서 처음 받아 든 승소 판결을 앞세워 다른 보톡스 판매 기업에 줄줄이 소송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휴젤을 상대로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며 "그 밖의 특정 기업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지만 (균주를 도용한 곳이 있다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법적 조치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업계 1위인 휴젤도 이날 곧바로 입장 자료를 내고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개발 시점과 경위, 제조공정 등에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게 확인될 것"이라며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소송 결과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휴젤과 메디톡스의 소송에 그 어떠한 장애도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직 1심 판결이 나왔을 뿐인데 각 제약사들이 서둘러 반박에 나서는 건 법원 판결이나 행정처분에 따라 보톡스 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뀐 일이 있어서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메디톡스 제품을 상대로 허가취소 처분을 내리자, 1위 자리가 메디톡스에서 휴젤로 넘어갔다. 메디톡스는 허가 취소에 대해 강제집행 정지를 신청해 현재 보톡스 제품을 그대로 판매하고 있지만 행정처분의 여파는 컸던 셈이다.
시장 규모도 크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보톡스 시장은 올해 65억 달러(7조6,466억 원)로 커질 전망이다. 보톡스는 1990년대 이후 피부미용 시장에 안착해 매출이 줄곧 상승세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의약품 중 하나이다. 원래 의료용 약물이지만 근육 축소나 주름 개선 등 주로 미용 시술에 널리 쓰인다. 국내에선 2006년 메디톡스를 시작으로 2009년 휴젤, 2013년 대웅제약, 2019년 이후엔 다수의 여러 제약사가 참전해 제조·판매 경쟁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