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 수천만원인데 경제적 독립?" 법조인들도 곽상도 무죄에 갸우뚱

입력
2023.02.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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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경제적 독립 내세웠지만
①입사 ②증여 ③상속관계 등
판결문 곳곳에서 반대 정황도
"신종 뇌물 루트" 목소리까지
친정인 여권마저 "납득하겠나"
곽 "아들·김만배와 소통 안해"

아들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온 곽상도 전 국회의원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부자(父子)가 경제적으로 분리됐다"는 것을 무죄 이유로 내세웠지만, 판결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빠 찬스'로 인한 불공정이 명백한데도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허탈해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준철)는 지난 8일 곽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가 국회의원이던 2021년 4월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를 퇴직하면서 성과급 50억 원을 받았고 직무관련성도 인정되지만, 그 돈을 곽 전 의원이 수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병채씨의 경제적 독립을 무죄 판단의 주요 논리로 내세웠다. ①병채씨가 2018년 6월부터 화천대유가 제공한 사택에 거주하면서 따로 생계를 꾸려갔고 ②곽 전 의원이 생활비를 지원했더라도 성인인 병채씨가 독립적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법률상 부양의무는 없으며 ③병채씨가 받은 성과급이 곽 전 의원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곽 전 의원 측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는 법정에서 "성과급 지급 과정에서 아들이나 김만배씨와는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증여에 상속 예정자인데 분가만으로 독립?"

하지만 곽 전 의원이 '경제적 독립'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의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3자가 뇌물을 받은 경우 경제적 지원 여부를 따진 판례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지만, 병채씨가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도 판결문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병채씨는 사회 초년생 시절 곽 전 의원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 병채씨는 법정에서 "중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8,000만~1억 원을 모았는데 그중 7,000만 원은 부모 증여"라고 인정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권유로 병채씨가 입사했다는 점은 곽 전 의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회의원이 아들의 사회생활 정착을 위해 수천만 원을 증여하고, 입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상속 부분도 논란거리다. 재판부는 병채씨가 퇴직금 수령 직후인 2021년 5월 곽 전 의원과의 통화가 대폭 늘어난 사실에 대해 "(성과급 관련 논의가 아니라) 곽 전 의원 아내의 사망에 따른 상속재산 정리 등으로 통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부모가 일군 재산을 자식이 받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독립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 해소'라는 재판부 논리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민법상 부모의 부양 의무는 자식이 미성년자이거나 성년 자녀가 장애가 있는 경우뿐"이라며 "병채씨가 곽 전 의원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재판부가 무리한 개념을 끌어다 쓴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이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신종 뇌물 루트 개척'이란 조롱 섞인 얘기가 쏟아지는가 하면, 울산 남구 법원사거리에는 '곽상도 의원 아들 50억 무죄, 버스기사 800원 유죄'라는 현수막까지 걸렸다. 요금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해고당한 것은 적법하고, 50억 원 수수는 무죄라는 법원 판단을 비판한 것이다.

곽 전 의원이 몸담았던 여권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50억 원을 30대 초반 아들이 5년 일하고 퇴직금으로 받았다는데 아들 보고 엄청난 돈을 줬겠나"라며 "초보적인 상식도 해소 못 하는 수사와 재판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라고 꼬집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직자가 자녀를 통해 뇌물을 수수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충분한데도 재판부가 너무 엄격하게 법리를 적용한 것 같다"며 "일반 상식과 법적 판단이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