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저게 정말 송민호라고? 내가 아는 그 아이돌? 퉁퉁한 얼굴에 까치집을 지은 머리,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의 자막처럼 뒷모습은 흡사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모습.
그런데, 이상하게 끌린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지난밤 TV 속 송민호는 그랬다.
10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는 송민호가 출연했다. 박나래는 "민호 회원님 오랜만에 봤는데 얼굴이 많이 편해졌다"고 인사했다. 송민호는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려놓고 살고 있다"며 체중이 증가했음을 인정했다.
이후 공개된 그의 일상. 송민호는 잠결에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며 눈앞에 차려진 모닝 분식 2인분 세트를 순식간에 클리어했다. 그는 "저녁에 많이 안 먹는데 살이 엄청 찐다"며 고개를 갸우뚱해 웃음을 자아냈다. 송민호는 어머니 집에 살던 반려 앵무새 치피를 데려와 함께 살고 있었다. 치피는 송민호의 헝클어진 머리를 둥지 삼아 돌아다니고, 송민호는 그런 치피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송민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취미는 보드였고, 오로라 컬러의 광택 있는 보드복을 입고 스키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모습과 달리 계속 넘어지면서 인간적 면모를 발산했다. 이후 송민호는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던 중, 가랑이가 터진 바지를 보고 당황했다. 결국 편의점에서 반짇고리를 구매한 그는 직접 바느질을 했다.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여 바느질을 하는 송민호를 지켜보던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앞서 송민호는 지난달 자신의 SNS를 통해 장문의 글을 공개한 바 있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많아지고 실패를 이겨내고 주변인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먹지 못하던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새로운 만남이 그저 피곤하고 집이 가장 편하지만 가장 고독해진다"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었다.
이어 "선택이 많아져서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울며 포기하고 싶다. 마냥 신나던 파티가 불편한 만남이 되고 소모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늙어가고 주름이 생기고, 그림을 그리고 무엇을 그려낼지 고민이 더 많아지고. 이 세상에 내 짝은 과연 있을까. 내가 늙어서도 고독한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3월 채널A 예능프로그램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했을 때도 심적 고통을 호소해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당시 송민호는 "2017년 말부터 죽을 것 같고 숨이 안 쉬어지는 공황장애를 얻었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게 됐는데 공황장애랑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장 빛나는 시기에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며 "촬영 끝나고 혼자 몰래 나와서 울기도 했다. 카메라가 꺼지면 삶이 비극이라고 느껴졌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뭐가 됐든 약해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게 습관이 됐다.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졌다. 하기 싫은게 아니라 할 용기가 없는 거다. 솔직하게는 '나 좀 알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용기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송민호의 이번 '나 혼자 산다' 출연은 용기를 내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 뒤의 공허함과 내적 압박감, 지독한 우울과 외로움은 가면을 쓰고 생활해야 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완전히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역시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
송민호의 사례는 연예계에도 좋은 예시로 작용할 듯하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겨우 생명을 연장할 만큼의 소식을 하고 마른 몸과 날렵한 턱선을 유지할 의무는 없다. 반드시 그래야 사랑받는 것도 결코 아니다.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오히려 '나와 같은 인간'임을 느끼는 데서 오는 동질감에 열광한다.
분명히 시대가 변했다. 시청자들은 옆집 형 같은 기안84를 좋아하고, 친근한 동생 같은 곽튜브를 환영한다. 일반인과 연예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평범한 직장인들도 자신의 SNS를 통해 끼를 뽐내기 바쁘다. 역으로 연예인 역시 신비주의 콘셉트가 통하던 때는 지났다. 조금 부족하고 허술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면모를 드러낼 때 대중은 친숙함을 느낀다.
부은 얼굴로 아침부터 배달음식을 흡입하며 노트북으로 예능을 보고 낄낄대는 송민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터다. 그래서 말인데,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살찐 송민호를 계속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