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버스·체육센터 함께 이용"... '공유 행정'으로 시도 경계 허문다

입력
2023.02.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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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 의료버스 운영
충북 진천·음성·괴산·증평은 '공유도시' 사업 시동
"소멸 위기 처한 지자체들 예산 효율화 등 이점"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공유 행정’을 시도하고 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나눠 쓰면서 정주 환경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편의시설 공동 활용을 비롯해 문화·의료·교육·복지 교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2016년부터 의료버스로 교류 협력

지난 7일 오후 충북 영동군 상촌면 교동리 마을회관 마당에 대형 버스가 들어섰다. ‘삼도봉 생활권 산골마을 의료·문화 행복버스’란 문구가 쓰인 버스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내리자 주민들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섰다. 마을회관에 임시진료소가 차려진 것이다. 이날 진료받은 주민은 23명.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고 관절염 뇌졸중 등을 앓고 있는 80대 이상 노인들이다. 교동리 이장 표순형씨는 “병원 이용이 어려운 산골 어르신들이 행복버스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삼도봉 생활권 산골마을 의료·문화 행복버스’는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등 경계를 맞댄 3개 시도의 3개 시·군이 공동 운영한다. 의료진과 진단 장비, 운영비를 세 지자체가 분담한다. 민주지산(해발 1,242m)을 공유하고 있는 세 지자체는 201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장비와 의료진을 실은 버스는 3개 시·군의 8개 읍·면·동을 순회 진료한다. 모든 진료와 상담비, 약값은 무료다. 대기하는 주민들을 위해 버스에서 무료 영화도 상영한다.

행복버스는 복지 사각지대의 오지마을 주민들에게 큰 인기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2만 8,017명이 진료를 받았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과 2021년엔 멈췄지만 지난해 6월부터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올해는 영동과 무주 각 36회, 김천 48회 등 총 120회 행복버스가 운행한다.


충청권 중심으로 다양한 공유행정 도입

충북 진천과 음성, 괴산, 증평군은 2019년 5월 상생 발전 차원에서 ‘중부 4군 공유도시’를 선언했다. 이후 4년간 실무회의와 조례 제정 등을 거쳐 15가지 협력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 4개 지역 주민들은 각 군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 등 각 군 소유 휴양시설을 이용 때도 4개 군민이 똑같은 할인 혜택을 받는다. 장기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공동 교육캠프를 운영할 계획도 추진 중이다. 4개 군 중에서 진천군과 음성군의 결속은 특히 더 공고해지고 있다. 충북 혁신도시 안에서 두 지역은 지역화폐를 공유한다.

충북 옥천과 보은, 영동군은 목욕탕과 도서관 등 생활 편의시설을 인근 지자체들이 공유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옥천군은 청산면 지전리 일원에 체육센터·목욕탕·공공도서관을 한 곳에 모은 ‘청성·청산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복합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 설계를 시작해 2025년 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옥천군 청성·청산면과 보은군 마로면, 영동군 용산면 등 4개 지역 이장협의회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고장마다 문화·복지 시설을 따로 지으면 예산 마련이 어렵고 유지 관리도 어려울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협의 끝에 가운데 자리한 청산에 계획한 시설을 건립하기로 합의했다. 주민 이용과 효율을 높이는 생활 SOC 복합화 모범 사례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국비 30억 원도 지원 받는다.

충북 지역 시민단체인 박일선 푸른세상 대표는 “인구·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이 공공시설과 자산·자원을 함께 활용하면 예산 효율화, 경쟁력 강화 등 이점이 많다”며 “공유 정책이 지역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주=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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