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이 박영숙 작가의 '달항아리'를 사들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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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2 12:00
25면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예술 시장은 그 진입장벽이 높다. 전문적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은 소수의 전문가의 안목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달항아리가 인기라고 한다.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한 사진, 부조 작품 등 다양한 시도도 뜨겁다. 하나의 전통이 현대미술작품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면 시장, 학술, 기관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달항아리는 고예술품과 현대작품으로 나뉜다. 김환기 화백이 즐겨 그리고, 그의 절친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가 사랑하던 달항아리는 18~19세기에 제작된 고예술품이다. 왕실의 식사를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돼 젓갈, 술 등을 담는 용도로 쓰였다. 이를 훗날, '달을 닮았다'고 김환기가 달항아리로 명명했다. 파리 유학시절 그가 그렸던 달항아리가 담긴 그림도 항아리를 용기에서 미적 대상으로 바꾸는 데 한몫했다.

관상품인 고예술품은 보존 상태와 구매자의 관심이 가격을 결정한다. 2008년과 2021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사이에는 큰 가격차가 있다. 2008년 약 3,000만 원에 팔렸는데, 2021년 경매된 달항아리는 예상가가 6억~9억 원으로 상승했지만 불찰 됐다. 전통을 견인하는 시장 규모에 반응하며 희소성, 작품 상태, 판매 실현 가능성에 따라 고예술품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진다는 걸 보여줬다.

현대 작품으로서 달항아리 가치는 어떻게 판단할까? 현존 작가의 작품이기에 희소성은 없다. 전시와 비평 등이 작가 명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아끼고 연구, 홍보해야 시장 규모도 커진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그렇게 큰 백자를 만든다는 것도 조선의 심상을 보여준 것이고, 현재에 와서 이를 리바이벌한 것도 전통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2004년 필자가 인턴 시절 때 런던 소더비 경매소에서는 일본 담당부서가 한국과 중국 예술품까지 총괄했다. 어느 날 일본 고미술품이라고 들어온 작품들을 살펴보던 영국 전문가 손에 작은 닻 마크가 만져졌다. 영국 첼시사는 도자기 바닥에 상표처럼 마크를 그리거나 양각을 했는데, 이를 통해 제작연도 판명이 가능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마크여서 일본 도자기라 생각했는데, 1750년 첼시사가 일본풍으로 만든 도자기였다. 그 순간 가격이 스무 배로 뛰었고, 판매 의뢰인은 작품을 회수해갔다. 이 경험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전통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영국인 감정가와 수집가들의 열정 덕분에 가격이 폭등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본햄스 경매소 앞을 지나던 내 시선은 쇼윈도의 한 경매도록에 쏠렸다. 현대도자작품이 다양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 중 '영국 도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나드 리치 작품도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방문한 뒤 달항아리를 구입하여 영국에 가져갔는데, 이 백자는 훗날 대영박물관에 기증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경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도자가 일본에 끼친 영향과, 일본 도자가 영국 도예에 끼친 영향을 말하고, 한국 작품도 경매에 참여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6년 마침내 런던 본햄스에서 한국 현대도자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큰 짝 4개에 가득 담겨 온, 36점의 한국 도자. 몇 달 후 대영박물관은 이 중 달항아리를 구매할 의사를 밝혔는데, 그 항아리 작가가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한 박영숙이다.

젊은 기획자의 당돌한 용기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서 한국·영국 사이의 예술 교류의미를 찾아내고 시장 호응도 이끌어 낸 유쾌한 성공 사례였다.



김승민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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