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경제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이 살인적인 고물가 등으로 가뜩이나 코너에 몰린 양국 경제를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지진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재건 비용은 수백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강진이 덮친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출구 없는 경제 위기'에 처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대지진으로 튀르키예가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6%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13년째의 내전으로 이미 경제가 파탄나 GDP가 110억 달러(2020년 기준)에 불과한 시리아 상황도 최악인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 지진은 국가 경제의 큰 줄기인 수출과 내수를 모두 망가뜨린다. 영국의 경제연구소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진으로 초토화한 튀르키예 10개 지역은 이 나라 전체 농업 생산량의 약 15%, 공업 생산량의 9%를 각각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적지 않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10개 지역의 생산 중단만으로 이 나라 GDP의 0.3~0.4%가 쪼그라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튀르키예 경제학자인 무스타파 손메즈는 "지진이 강타한 지역은 해외 수출용 생산 비중이 높아 튀르키예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난 지역엔 여행객 발길이 끊길 수밖에 없어 관광 산업 위축도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취약하던 경제 구조는 지진으로 더 휘청댈 게 뻔하다. 튀르키예는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불구, '저금리' 통화정책을 고수해 온 탓에 지난해 10월 물가 상승률이 85%에 달할 만큼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초 달러당 13리라 정도였던 리라화 가치는 1년 새 19리라를 육박하는 수준까지 추락한 상태다.
정부의 공공지출까지 본격화하면 물가는 더 치솟을 수 있다. 실제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드로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최근 지진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가구당 1만 리라(약 67만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추정되는 재건 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많게는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재건 비용이 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며 "지진 피해가 커지면서 불어나는 비용은 국가의 재건 여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시장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지진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튀르키예 시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탓이다. 급기야 튀르키예는 오는 14일까지 5거래일 동안 주식시장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 외국인 자본 이탈이 거세지며 이번 주에만 보르사 이스탄불(BIST)100이 16%나 폭락한 데 따른 조치다.
지진 여파로 튀르키예 세이한 항구 터미널을 통한 이라크와 아제르바이잔 등 주변국의 원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공급 불안 우려에 배럴당 78달러를 웃돌며 최근 상승세다. 다만 해당 수출량(월 기준)이 전 세계 물량의 1% 정도에 불과해 파급 효과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