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핵 공격 능력 과시"... 김정은, 열병식 연설 없이 웃었다

입력
2023.02.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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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8일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술핵운용부대를 앞세워 타격능력을 한껏 과시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더 끌어올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은 없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낸 터라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분간 내부 결속을 다진 뒤 3월 한미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 전후로 고강도 도발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선중앙통신은 열병식에서 온갖 첨단무기와 전력이 늘어선 장면을 묘사하며 “우리 국가의 최대 핵 공격 능력을 과시했다”고 9일 자화자찬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화성-17형 ICBM 시험발사장에서 언급한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라는 구호를 재차 인용했다.

떠들썩한 잔치였지만 김 위원장은 마이크를 잡지 않고 열병식을 지켜봤다. 북한 매체들은 리설주 여사, 딸 주애와 등장한 김 위원장이 군 지휘관들을 격려했다고만 전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12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열병식이 13차례 열렸는데 이 중 5차례는 공개연설에 나섰다.

당초 열병식에서 대남·대미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김 위원장이 37일간의 잠행을 깨고 지난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데다 새로 만든 미사일 총국의 존재를 공식화한 만큼 기세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이미 연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에 하지 않았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침묵함으로써 주변 정세를 신중하게 바라본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남한을 '명백한 적'이라며 “전술핵무기를 다량 생산하고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이에 국방부는 “북한이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예상과 달리 연설하지 않은 것은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군사력을 한껏 과시한 점에 비춰 도발 가능성은 더 커졌다. 시점은 내달 한미연합훈련이 유력해 보인다. 우리 군은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한 대규모 실기동 훈련을 부활해 규모를 키울 방침이다. 정상적 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을 자극할 만한 요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포함해 2월 중에는 체제 결속을 다지면서 3월 한미훈련에 대한 강력한 맞대응을 준비할 것”이라며 “미국의 전략자산이 얼마나 동원되느냐에 따라 대응 수위를 조절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준비를 끝낸 7차 핵실험은 주변국과 국제사회 반발 등 실익이 크지 않아 당분간 자제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정승임 기자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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