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만드는 번개보다 인류에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있을까? 과거의 인류에게 번개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신의 변덕이나 징벌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신인 제우스가 번개를 다스린다고 상상한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특정 기상 조건에서 구름에 쌓이는 막대한 양의 전하가 엄청난 전류로 방전되는 번개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번개를 인간은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인류를 예측하기 힘든 번개로부터 구한 대표적 발명품은 피뢰침이다. 18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으로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밝혔다. 그 와중에 발명된 피뢰침은 인류의 목숨과 자산을 번개로부터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끝이 뾰족한 피뢰침은 높은 빌딩 위에 설치되어 자신의 높이 정도에 해당하는 영역을 낙뢰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즉 100m 높이에 설치된 피뢰침은 대략 반경 100m 주변 영역을 커버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번개를 유도해 주변 시설물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작은 로켓에 땅으로 연결된 금속선을 달아 뇌운으로 발사해 번개를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로켓의 선을 통해 방전시키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피뢰침을 로켓에 묶어 높이 쏘아 올리는 방식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번개가 발생할 곳을 찾아 매번 로켓을 준비해 발사하는 건 매우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과학자들은 로켓을 대신할 수단으로 고출력 레이저를 고려해 왔다.
고출력 레이저를 대기로 발사하면 공기 분자들이 이온화되면서 전기가 잘 통하는 전도성 채널이 만들어진다. 레이저를 쏜 방향으로 금속 피뢰침처럼 번개를 유도할 수 있는 성질을 띤 플라즈마 기둥이 형성되는 것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번개 유도란 아이디어는 1970년대 중반 제안되었고 실험실 내 소규모 실험에서는 타당성이 확인되었으나 실제 번개가 치는 야외에서 실험이 성공한 적은 없다.
레이저를 이용한 실험을 야외에서 수행하기 위해선 번개가 자주 내리치는 곳이 최적일 것이다. 과학자들이 선택한 곳은 스위스 북동부의 해발 2,500m에 달하는 샌티스산이었다. 124m 높이의 송신탑이 자리한 이곳엔 1년에 100번쯤 낙뢰가 떨어진다. 탑 근처에 설치한 적외선 레이저는 송신탑 위 하늘로 초당 1,000번의 강력한 레이저 펄스를 발사할 수 있었다. 연구팀이 최근 '네이처 포토닉스'에 발표한 논문에 실린 사진에는 번개가 레이저 방향으로 50m 정도 정렬함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레이저로 번개의 방향을 틀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는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번의 시도 중 번개가 레이저 방향으로 정렬한 비율은 낮았다. 그 이유를 밝히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이 남은 숙제다. 연구팀은 펄스 레이저로 형성하는 전도성 채널의 높이를 500m 이상 확대해서 번개를 인위적으로 유발하는 실험도 계획하고 있다.
과학적 성과는 모든 게 잘 갖춰진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정밀한 실험 속에서 성취되기도 하지만, 사하라의 사막이나 아마존의 열대우림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번 연구는 번개가 수시로 내리치는 스위스의 고산 지역을 찾아 여름 내내 머물며 번개를 기다린 과학자들의 열정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바야흐로 인류는 땅 위로 떨어지는 낙뢰를 피뢰침으로 방어하는 단계를 넘어 뇌우 속으로 레이저를 쏘아 번개를 컨트롤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 지난 2년 반 동안 [고재현의 물리학의 창]을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기회에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로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