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전 국회의원 판결문에는 '정영학 녹취록'과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의 전문진술에 대한 증거능력 판단도 담겨 있었다. 녹취록과 전문진술은 대장동 일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근들의 재판에서도 유·무죄를 가를 핵심 물증으로 꼽혀온 만큼, 다른 재판부에서도 이 같은 판단을 유지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대장동 사업을 도운 대가로 아들 병채씨가 성과급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도록 했다고 봤다. 대장동 개발 사업자 공모 당시 하나은행이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이탈하려고 하자, 곽 전 의원이 김씨 부탁을 받아 하나은행을 잔류시켰다는 게 검찰 주장이었다.
검찰은 그러면서 '정영학 녹취록'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녹취록에는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병채씨를 통해 50억 원을 주는 방법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사자들은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유죄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정 회계사가 녹음기 파일을 컴퓨터로 수정한 뒤 USB에 담아 검찰에 제출하면서 조작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녹취록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①녹음기 파일과 USB에 담긴 녹음파일의 해쉬값(디지털 자료의 고유식별번호)이 동일하고 ②녹음파일 재생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대목이 없었다고 봤다. 정영학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인정된 셈이다.
검찰은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진술도 증거로 내세웠지만, 일각에선 사실관계의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들의 진술은 대체로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을 언급하는 '전문(傳聞)진술'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문진술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곽 전 의원 재판부는 민간업자들의 일부 증언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예컨대 "김씨가 2021년 9월 '상도형은 아들내미 줬어'라고 말했다"는 남 변호사 진술의 증거능력은 기각됐다. 김만배씨가 법정에서 관련 내용을 증언한 데다, 신빙할 만한 상태에서 말한 것이란 점이 증명되지 않아 죄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로부터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 회장한테 전화해서 막아줬기 때문에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들었다"는 남 변호사 진술은 증거능력이 일부 인정됐다. 김씨가 발언할 당시 답변을 강요받았을 여지가 없고, 내용의 신빙성도 담보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곽 전 의원은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과급 50억 원은 이례적"이라면서도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 로비 대가로 50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직무관련성을 인정한다"면서도 곽 전 의원과 병채씨가 경제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증거능력이 인정된 정영학 녹취록과 대장동 업자들 진술만으로는 유죄 입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곽 전 의원 재판부의 판단은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 비리와 대장동 일당들의 본류 사건에서도 정영학 녹취록과 전문진술은 핵심 증거이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녹취록과 전문진술 이외에 다른 증거를 얼마나 많이 제시할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