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얼굴들', 그 윤리적 요청

입력
2023.02.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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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깨달음은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2년 동안의 칼럼 연재를 마치는 마지막 칼럼이라는 것을 알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기회는 그래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난주, 방탄소년단의 부산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옛 투 컴 인 시네마'가 개봉했다. 스타디움에서는 아무리 큰 스크린을 통해 공연 장면을 보여준다 해도 가수들의 눈빛과 표정을 충분히 읽을 수 없지만, 영화관에서는 공연장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얼굴과 눈빛, 그 순간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신나게 공연 실황을 보고 있던 나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난가을의 그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너무나 생생히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멋지게 공연하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눈빛과 얼굴들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군대 가기 전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꾹 참아내던 순간의 표정을, 정치인들에 의해 손목이 비틀리고 공연장 부지 문제로 온갖 마음고생을 겪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참아내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들을 이전의 시간과 그리고 다가올 이후의 시간들 속에서 다시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단순히 얼굴의 물리적 특징을 식별하는 것과 다르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마주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면 우리는 그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슬픔, 기쁨, 분노를, 나아가 그가 살아온 시간 전체, 그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래오래 쳐다보면 상심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 이상 간단히 한 명, 두 명처럼 숫자로 세어질 수 없는 얼굴.

그의 삶이라는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그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나와는 다른 그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질문한다. 얼굴을 마주하게 된 우리는 그 질문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함부로 나와 동일한 존재로 동일시해버리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며 우리를 윤리적인 존재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첫 칼럼에서 나는 방탄소년단이 지니는 영향력의 배경으로 친절함을 짚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인간에 대한 친절함이라는 윤리적 태도. 사람들이 이 잔인하고 험한 세상에서 정말 보고 싶고 따르고 싶었던 가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흔히 친절함의 가치는 고객 서비스나 인사치레의 일부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진정한 친절함으로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연 실황 영상에서든, 영화에서든, 북적이는 지하철에서든, 아니면 버스를 기다리는 이의 뒷모습에서든, 얼핏 보이는 단정하고 자신만만하고 강해 보이려 애쓰는 얇은 가면을 오래오래 쳐다보자. 그때 비로소 아프고, 고통스럽고, 연약한 타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에게서 솟아날 수밖에 없는 친절함을 상기하며, 칼럼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이지영 한국외국어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