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툰드라', 내 마지막 단편소설이라 생각… 모든 것 쏟아부은 기분"

입력
2023.02.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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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 37년 만에 소설집 '툰드라' 출간
1987~2022년 집필한 단편 8편 묶어 
구도의 마음으로 걸어온 문학의 길
삶 여행 문학, 모두 깨닫기 위해서

"표제작 '툰드라'는 단편인데도 장편을 쓰는 기분이었어요. 마지막 단편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수정도 많이 했고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느낌이죠."

1980년대 대표 청년문학으로 불렸던 '숲속의 방'의 작가 강석경(72)이 37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장편소설 '미불' '신성한 봄', 산문집 '일하는 예술가들' '이 고도를 사랑한다' 등을 꾸준히 발표해왔지만, 단편을 묶은 책은 '숲속의 방'(1986) 이후 처음이다. 1987년 단편 '석양꽃' 집필 후 장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장편소설 '청색시대' '가까운 골짜기'를 계기로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쓰는 장편에 집중하고 싶었다"면서 "단편 위주인 한국 문학계 발전을 위해서도 장편소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단편소설 소식이 뜸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신간 '툰드라'에는 '석양꽃'부터 최신작 '툰드라'(2022)까지 총 8편이 실렸다. 무려 35년의 세월을 아우른 책이다. '툰드라'는 소설집의 중심이다. 작가는 "2014년 몽골에 다녀온 후 툰드라의 이미지가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면서 "수만 년 동안 이끼와 풀을 찾아 순록이 이동하고, 사향소의 뼛조각도 흩어진 툰드라의 길이 고난에도 삶을 이어가는 우리 삶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툰드라'라는 제목과 몽골 배경은 마지막 단편 구상의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표제작 외 다른 수록작에도 툰드라가 직접 언급되거나 그 광활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대목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소설집은 불교적 색채가 가득하다. 구도의 문학으로 불리는 강석경 소설답다. 표제작 '툰드라'의 주인공 '주영'은 마흔아홉에 몽골로 떠난다. 아내가 있는 친구 '승민'과의 작별여행이다. 제도를 거스르는 삶을 관통해 온 '주영'은 소설 결말에 몽골 고원 정상에서 스투파(탑)만 있는 무인의 절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무소유의 자유, 신성한 자연 앞의 겸손 등을 느낀다. "해탈이 거기 있었다"는 문장에서, 독자는 만 년에 걸쳐 모든 유전자가 결국 잠드는 광활한 땅 앞에 세속의 고뇌가 덧없어지는 순간을 만난다. 깨달음을 파고드는 작가의 메시지와 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른 수록작 속 인물들도 "자신과 맞지 않는 토양에 잘못 떨어진 씨앗"으로 본인을 설명하는 '주영'을 닮았다. 세속의 규칙에 길들여지지 않았고, 어딘가 부유하는 듯한 인상이 그렇다. 스스로를 "정신적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작가가 겹쳐 보인다. 그들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 곧 작가의 생인 셈이다. "1989년 인도 여행으로 처음 넓은 세계를 만났고, 이 좁은 사회(한국)에서 내 고민은 비본질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에게는 여행도, 문학도, 삶도 모두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 소설집에는 그 부단한 노력과 지난한 과정이 한 자 한 자에 눌러 담겼다.

작가는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이화여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해(1974년)에 제1회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숲속의 방'으로 오늘의 작가상·녹원문학상을, 단편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로 21세기 문학상을, 장편 '신성한 봄'으로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노장에게 문학의 의미를 묻자 자신의 첫 작품 '빨간 넥타이'를 언급했다. "그림에 빨간색을 잘 쓰던 주인공이 광고대행사 일을 하면서 파란 넥타이만 매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빨간 넥타이'를 찾게 돼요. 진정한 자기를 찾는 거죠. 문학이 그래요. 나를, 자기 세계를 찾는 과정입니다."

마지막 단편이라 단언했지만 펜을 놓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주에 살면서 푹 빠진 신라 역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작가는 밝혔다. "자유로운 사회였던 신라를 공부하게 되면서 '내 뿌리는 유교(조선)가 아니라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라는 인도, 그리스와 함께 저에게는 '필연의 땅'이에요. 그래서 그 얘기를 꼭 한번 써보고 싶어요."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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