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먹는 하마'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프라'.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설립을 두고 지역 주민, 기업, 정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면서 합의점을 쉽사리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IDC 설립 문제를 단순히 지역 주민들의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현상으로 보거나 전력망 부하 문제만 보고 수도권에 IDC를 지으려는 기업에 규제만 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한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9년까지 건설을 추진 중인 신규 IDC는 637개에 이른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내에서 운영 중인 IDC가 147개인 점을 감안하면 네 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새로 들어설 IDC의 86%(550곳)는 수도권에 몰려있다.
정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전력망 과부하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새 IDC에 필요한 전력 수요만 4만1,467메가와트(㎿), 그중 수도권만 3만5,596㎿에 이른다. 겨울철 국내 최대 전력 수요가 약 9만㎿인 것을 감안하면 추가될 IDC를 감당하려면 지금보다 40%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을 지방 발전소에서 끌어와야 하는 수도권에 IDC가 집중되면서 전력 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IDC가 몰리다 보니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들은 초고압선이 아이들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를 대체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기우라고 보지만 이 역시 IDC를 둘러싼 갈등을 키운다.
임윤석 한전 전력연구원 책임은 "우리 법에선 송전선로 건설 때 자기장 배출 기준을 평균 국제 기준인 100마이크로테슬라(μT)보다 낮은 83.3μT를 적용했다"며 "그럼에도 학부모나 주민들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노선 변경 등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주민 반대로 IDC가 들어서려다 없던 일이 된 적도 있었다. 네이버는 2017년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제2데이터센터를 지으려다 주민 반발로 포기했다. 결국 네이버는 세종시로 장소를 옮겨 만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새로 들어설 IDC를 지방으로 옮기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전에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IDC를 대상으로 예외적으로 전기 공급을 유예하거나 거부할 권한을 줘서 수도권에 IDC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반면 기업이 지방에 IDC를 지을 경우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시설부담금 일부를 깎아주고, 부지 선정에 도움을 준다는 당근도 꺼내놓았다.
이런 당근책에도 기업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IDC는 대규모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 만큼 수십 년을 바라보고 짓는다"며 "단기적이고 일회성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의 인센티브는 큰 메리트가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최근 늘어나는 IDC 대부분이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쓰기 위한 목적이 아닌 상업용 외부 임대(코로케이션) 설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화재가 발생한 SK C&C 데이터센터 역시 네이버, 카카오 등 여러 기업들이 입주한 외부 임대용 설비였다. 비수도권에 있는 IDC는 주로 재해 대응을 위한 이중화 설비나 해당 지역의 기업 및 기관에서 활용하는 용도다. 한국데이터센터 연합회 관계자는 "상업용 데이터센터의 경우 입주 고객사 직원이 서버 설정 등을 수시로 바꾸기 위해 머물기 때문에 회사와 가까운 곳을 좋아한다"며 "유지보수 협력 업체까지 수도권에 있는 만큼 지방으로 갈 경우 운영 측면에서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잠깐이라도 지연되지 않는 초고속 통신이 필요한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IDC가 수요처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클라우드 서비스 세계 1위 업체 아마존 웹서비스도 이런 이유로 전 세계 21개 주요 도시에 IDC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빠르게 증가하는 IDC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첨예한 갈등을 기업 스스로 해결하도록 못 본 척할 경우 반도체 공장처럼 설립 때마다 몇 년씩 미뤄지는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도 경기 평택 반도체공장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탑 건설을 두고 지역 주민의 반대로 5년가량을 허비했다. 주민이 많지 않은 산간 지역은 지상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음에도 지역 주민의 반발이 거세자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인허가를 지연시켰다. 결국 삼성전자가 750억 원을 들여 주민들의 요구를 전부 받아들이면서 문제는 해결됐다.
특히 정부가 기업이 IDC를 지방으로 옮기는 것을 고민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전력 요금 할인 등 기업의 인프라 비용을 줄여주는 것과 함께 비수도권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수요 기업과 기관의 이전을 통해 현지에서 IDC 수요를 발생시키는 방안 등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결국 국가 균형 차원에서 데이터센터의 질서 있는 확산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는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경제성 있는 논리를 제안하면 기업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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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르포] "집 앞에 데이터센터 두고 어떻게 삽니까"…주민들은 왜 'IDC 결사 반대'하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0315070004301
②"한국, 동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 부상"…4차 산업혁명 먹거리로 주목받는 I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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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폭증하는 IDC 두고 지역 주민·기업·정부 '동상삼몽'…"문제 해결 기준부터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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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르포] 10년 동안 '멈추지 않은' 네이버 IDC…전력 끊겨도 사흘은 끄떡없는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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