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친윤석열계의 집중 포화를 받고 국민의힘 당권 도전을 중도 포기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 7일 친윤 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김기현 후보를 만나 "많은 인식을 공유했다"며 사실상 지지를 표명했다. 김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선두자리를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중간지대에 있던 나 전 의원이 김 후보 손을 들어주면서 당권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김 후보와 오찬을 한 뒤 기자들을 만나 "(김 의원과) 많은 인식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며 "전당대회 모습에 대한 걱정이 많다. 지금 어려운 시기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기다. 총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불출마 선언 뒤 "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역할을 할 공간은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김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나 전 의원과 더 많은 의견을 나누고, 자문을 구하도록 하겠다"며 "우리 당에 대한 애정, 윤석열 정부 성공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조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후보는 지난 3일 나 전 의원의 서울 용산구 자택을 찾은 데 이어 가족 여행지인 강원 강릉까지 가 지지를 요청했다. 전날엔 나 전 의원을 공개 비판했던 친윤계 일부 초선 의원들이 나 전 의원과 면담하기도 했다.
이날 두 사람은 '지지'나 '연대' 같은 명확한 표현은 피했다. 나 전 의원이 현재 서울 동작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당협위원장의 직접적인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당헌·당규를 우회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다만 나 전 의원이 김 후보와 나란히 선 모습을 공개하면서 '안철수와의 연대는 없다'는 메시지만큼은 확실히 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 측은 이번 회동을 계기로 본경선 진출자를 확정짓는 책임당원 대상 여론조사(8~9일)에서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내일부터 시작하는 여론조사에서 당심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김 후보는 이날 나 전 의원과의 '느슨한 연대'를 계기로 안 후보와의 차별화 전략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나 전 의원을 적극 끌어안음으로써 자신의 본래 강점인 온화함과 포용·화합의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나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우는 '정통 보수' 후보 전략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을 언급하며 논란을 빚은 후원회장 신평 변호사가 이날 사퇴한 것과 맞물리면서 그간의 '악재'를 털어 냈다는 인상을 주는 효과도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김 후보가 '삼고초려'로 나 전 의원을 설득하면서 분열에서 통합으로 가는 첫걸음을 뗐다고 본다"며 "전대 후유증을 우려하는 당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후보가 확실히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많다.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과도한 '찍어내기'에 대한 반발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당장 안 후보의 상승세를 꺾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전폭적인 지지 선언이 아니어서 나 전 의원 지지층 표심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통령실의 과도한 지원사격이 신규 당원들의 정서적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아직은 '소극적 지지'에 머물고 있는 만큼 우위를 점한 안 후보를 꺾을 만큼 당장 판세를 뒤집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