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을 살해한 남자, 사람들은 '의인'이라고 칭송했다

입력
2023.0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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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영화 '성스러운 거미'
2001년 이란 연쇄살인 실화 바탕
종교에 사로잡힌 이란 사회 비판

거리의 여자들이 죽는다. 범인은 대범하다. 살인 후 지역방송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시체가 있는 곳을 알린다. 시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로 칭칭 감겨 있다. 거미가 먹이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슷해 사람들은 ‘거미 살인’이라고 지칭한다.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곳은 이란 이슬람 성지로 여겨지는 도시 마쉬하드다.

연쇄살인범의 범행 패턴은 뚜렷하다.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윤락녀를 태워 간 후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은 범인을 못 잡기보다 안 잡는 듯하다. 테헤란에서 취재를 온 여기자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고 의문을 품는다.

연쇄살인범은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다. 그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한 중년 가장이다. 사이드는 이란·이라크 전쟁 참전자다. 순교하지 못하고 생환한 삶에 대해 회한이 크다. 그는 성지를 더럽히는 거리의 여자를 죽이는 일을 신이 자신에게 내린 소명으로 여긴다.

사이드는 종교적 신념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이행하는 광신도에 불과할까. 영화는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살인마임을 은근히 표현한다. 사이드는 성적인 동기는 없다고 주장하나 어떤 살인 현장에서 변태적 욕구를 언뜻 드러낸다. 그는 가족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갔다가 어린 아들이 작은 실수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죽일 듯이 아들에게 달려든다.

영화는 사이드의 살인 행각을 비추며 이란 사회의 부조리를 들춘다. 라히미는 여자라는 이유로 오해받고 모욕당하기 일쑤다. 마쉬하드에 도착해 예약한 호텔을 찾아가나 직원은 방이 없다고 둘러댄다.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닌다는 이유에서다. 라히미가 사이드의 범죄를 취재하다 만난 한 종교 지도자는 근엄하게 꾸짖는다. “기자의 본질은 진실을 알리는 거지 공포를 조장하는 게 아닙니다.” 언론을 감시견이 아닌 애완견으로 여기는 이란 지도층의 인식이 반영돼 있다. 거리의 여자들은 가난을 못 이겨 밤거리에 나섰다.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자다. 사이드는 돈으로 성을 사는 남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라히미의 노력으로 사이드는 붙잡힌다. 16명이 살해된 후다. 사이드 검거 후엔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지역 재향군인회가 사이드 구명 운동에 나선다. 사람들은 사이드를 살리겠다며 서명에 나서고 집회를 연다. 사이드가 의로운 일을 했다며 되레 칭송한다. 영화 도입부 어느 집 거실 TV에서 9·11 테러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종교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은유다. 종교에 사로잡힌 이란 사회를 영화는 그렇게 비판한다.

2000~2001년 이란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경계선’(2018)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알리 아바시가 연출했다. 판타지 ‘경계선’이 은유로 인간의 비인간성을 비판했다면, ‘성스러운 거미’는 직설로 이란 사회와 신앙의 맹목을 통박한다.

수입사 판씨네마 보도자료에 따르면 아바시 감독은 “연쇄살인마가 태어나는 사회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정치적·종교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 측면에 집중하면서 이란 내 뿌리 깊은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아바시 감독은 이란에서 나고 자란 후 덴마크국립영화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이란 국적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주하고 있다. 영화는 요르단 암만에서 촬영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여자배우상을 받았다. 8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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