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공식화한 이른바 ‘도쿄 선언’이 오늘로 꼭 40주년이다. 당시 정부도, 업계도, 심지어 해외에서도 코웃음을 쳤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넥스트 컨버전스’에서 “삼성이 반도체칩을 개발하고 생산하겠다는 것을 두고 서양에선 미친 짓(lunacy)으로 여겼다”고 회고했다. 인텔은 그를 과대망상증 환자라고까지 비꼬았다.
이병철 회장은 이런 우려에도 아랑곳 않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밀어붙였다. 불과 6개월 만에 64K D램을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10년 뒤엔 메모리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라섰다.
도교선언 40주년을 맞은 삼성의 현재는 그리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 점유율이 40.6%(작년 3분기)에 달하는 등 여전히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이긴 하다. 하지만 작년 4분기 반도체 사업 부문 영업이익이 97%나 급락하는 등 업황에 크게 휘둘리는 데다 미국과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무엇보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비롯한 비메모리 시장에서 대만의 TSMC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작년 3분기 점유율(15.5%)은 TSMC(56.1%)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도요타, 소니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뭉쳐 만든 라피더스의 맹추격도 무섭다.
정부가 ‘삼성 특혜’라는 논란을 무릅쓰고 반도체 투자세액공제를 대기업의 경우 8%에서 15%로 다시 높이겠다고 나선 건 반도체 위기가 나라 경제 전체의 위기여서다.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며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경쟁국들에 비해 미흡할 수는 있다고 해도, 이런 지원책에 발맞춰 삼성도 움직여야 한다. 이병철 회장에게 바통을 물려받은 이건희 선대회장은 30년 전인 1993년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삼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제 이재용 회장의 차례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과감한 실행력과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