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선수들에게 클럽 교체는 ‘독이 든 성배’나 다름 없다. 변화를 통해 보다 나은 성적을 내려는 시도지만, 반대로 섣부른 클럽 변경이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브랜드의 모델 변화' 수준이 아닌 '다른 브랜드의 클럽'으로 교체하는 것은 프로들에게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수들은 '익숙한 무기’를 쉽게 바꾸지 않고, 교체 하더라도 수개월 동안 적응 기간을 거친 뒤 실전에 사용한다.
하지만 긴 시간 슬럼프에 빠져있던 저스틴 로즈(43·잉글랜드)는 과감하게 아이언 교체한 뒤 11시간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무려 4년만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이어서 감격을 더했다.
로즈는 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에서 열린 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총상금 90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69타로 우승했다. PGA투어에서만 11승째다.
한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땄던 로즈였지만, 2019년 1월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PGA투어는 물론 DP 월드투어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로즈는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4년이나 이어졌던 우승 갈증을 씻으며 부활의 나래를 폈다.
'43세 베테랑의 4년만의 우승' 못지 않게 관심을 끈 것은 그의 아이언이다. 2020년부터 용품사들과 골프 클럽 사용계약을 맺지 않고 있는 로즈는 올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서 테일러메이드 아이언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서 코브라 골프의 아이언을 들고 나왔다. 로즈가 코브라 아이언을 쓴 것은 10대 시절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놀라운 점은 이 아이언은 로즈가 1라운드 경기에 나서기 불과 11시간 전에 로즈 손에 쥐어졌다는 것이다.
대회 이틀 전 연습장에서 코브라의 신제품 아이언을 시험 삼아 쳐본 로즈는 영국으로 귀국 한 뒤 조금 더 훈련해 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연습장에서 이 아이언을 다시 시험해본 뒤 당장 대회에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볼이 겨냥한 대로 훨씬 잘 날아가고 일관성이 있었다”고 로즈는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그립과 샤프트를 끼운 새 아이언 세트가 로즈에게 전달된 것은 1라운드 티오프를 11시간 남긴 때였다.
로즈는 강풍과 비, 우박, 추위 등 온갖 악천후 속에서 3라운드 83.33%, 4라운드 77.78%의 놀라운 그린 적중률을 기록하며 3타차 우승을 따냈다. 2라운드 15번홀에서는 이 아이언으로 개인 통산 세번째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로즈는 “지난 2, 3년 동안 클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바꿨다. 좋은 경기를 하려면 좋은 장비와 함께 내 경기 방식과 스윙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우승으로 내 골프는 더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