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케냐 대통령 선거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전체 등록 유권자의 64.77%가 투표를 했으며, 1992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케냐 대선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선거였다. 윌리암 루토 후보는 50.49%를 득표해 48.85%를 득표한 라일라 오딩가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자신의 종족 지도자에게 투표하는 종족투표가 선거 결과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케냐 선거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전임 케냐타 정권 말기에 케냐인들이 직접 경험한 급증한 생활비와 높은 실업 문제는 누구의 책임이며 어떤 후보가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대선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키쿠유 출신 케냐타 대통령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루오 출신의 오딩가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칼렌진 출신의 루토 후보는 지난 두 대선에서 케냐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참여해 승리했고, 케냐타 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했음에도 대통령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지지가 후보자의 승리로 이어지진 못했다. 기존의 야당 지도자였던 오딩가 후보가 케냐타 대통령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오히려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루토 후보는 케냐타 정부의 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루토 대통령은 취임 후 아시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매년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을 측정해온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지난 16년 연속으로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했다. 아프리카 대륙도 이러한 흐름을 비켜갈 수 없었지만, 개별 사례를 보면 다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앞서 소개한 케냐와 더불어 잠비아인들도 억압적인 정치 상황을 극복하고 2021년 선거에서 야당 후보자인 히칠레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탄자니아의 하산 대통령도 전임 마구풀리 대통령이 도입했던 정치 활동 제한 조치들을 완화해 시민사회의 활동 공간을 넓히기도 했다. 최근 케냐와 말라위 사법부는 선거 부정이 명백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결정함으로써 사법부 독립성과 선거의 공정성을 강화했다.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험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역시 강하다. 1970년대 이 지역의 정치 불안을 대변했던 군부의 정치 개입이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단과 차드,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정부가 군부 쿠데타로 물러났다. 우간다와 짐바브웨는 사이버안보법이나 포괄적 반부패법을 도입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민사회 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우아타라 대통령은 1회만 연임을 허용했던 헌법을 개정해 세 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르완다의 카가메 대통령도 2015년 개헌을 통해 공식적으로 2034년까지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민주주의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개혁을 바라는 아프리카의 청년들이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021년 정부와 여당의 정치 억압이 노골적이었던 잠비아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청년 시위대는 공개되지 않은 장소로 이동하고 그들의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생중계해 야당 후보자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