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즐겨 쓰는 대표 앱이 2가지 있다. 메신저와 명함관리 앱이다. 명함관리 앱은 직장인이라면 으레 주고받는 명함을 알아서 정리해 주는 앱이다. 앱 실행 후 스마트폰으로 명함 사진을 찍으면 이름, 회사,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 필요 사항을 문자로 바꿔 자동 저장한다. 일일이 명함을 분류하고 옮겨 적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
'리멤버'는 국내 명함관리 앱의 대명사로 수년째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수십 종이 치열하게 경쟁한 명함관리 앱 분야에서 리멤버가 1위를 한 것은 남다른 비결 덕분이다. 리멤버를 만든 신생기업(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41) 대표를 서울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만나 비결을 들어봤다.
경기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최 대표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인터넷 의류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며 진로가 바뀌었다. "1년 반 동안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셔츠, 넥타이 등을 떼다가 팔았는데 꽤 잘됐어요. 덕분에 사업에 관심이 생겼죠."
그 바람에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해 AI연구소에 들어갔으나 졸업을 못 하고 2006년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6년 동안 딜로이트컨설팅과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을 다녔어요."
그 시절 경험한 미국 출장은 창업의 계기가 됐다. "미국 출장 때 구인구직 서비스 '링크드인'을 처음 봤어요. 국내에서는 생소했지만 미국인들은 링크드인으로 대부분 이직을 했죠. 이를 보고 동양판 링크드인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그러려면 많은 직장인들의 정보가 필요했다. 직장인들의 정보는 명함에서 비롯된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최 대표는 자연스럽게 명함관리 서비스 리멤버를 구상하고 2013년 드라마앤컴퍼니를 창업했다. "리멤버는 주력 사업이 아니라 동양판 링크드인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였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무료로 제공했죠."
리멤버는 유일한 명함관리 앱이 아니었다. 중국업체가 운영하는 '캠카드' 등 무려 20종이 넘는 앱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 리멤버가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불만이 단초였다. "서비스가 잘되려면 사람들이 오래 써야죠. 그런데 당시 명함관리 서비스를 계속 쓰는 사람이 직장인의 10%에 불과했어요. 이유는 불편했기 때문이에요."
당시 명함관리 앱은 오류가 많았다.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이 떨어져 사진을 찍으면 명함 속 글자가 엉뚱하게 입력됐어요.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았죠."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중 어떤 이용자의 한마디가 그의 머리를 때렸다. "비서가 명함을 대신 입력해 줘서 힘들지 않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최 대표는 리멤버를 '명함관리비서'로 홍보하며 OCR을 능가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바로 사람이 일일이 입력하는 수작업이다. "스마트폰으로 명함을 찍어 올리면 직원들이 명함 속 글자를 일일이 입력했어요. 당연히 오자가 없고 이용자의 불만도 사라졌죠."
이를 위해 그는 글자 입력만 전담하는 외부 인력 20명과 계약했다. "명함 한 장당 비용을 주는 방식으로 계약했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명함 입력 대행 서비스도 도입했다. "명함이 너무 많아 사진 찍는 것도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명함을 상자째 보내면 대신 입력해 줬어요. 심지어 택배를 보내 명함 상자까지 받아 왔죠. 이를 모두 무료로 제공했어요. 그러니 모두 리멤버를 썼죠."
그 바람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수작업 소문이 나며 사람들 사이에 '충격과 공포의 앱'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죠. 그렇게 놀려도 이용자들은 편하면 쓴다는 방증이 됐죠."
이용자가 늘면서 명함 입력을 전담하는 계약자가 3,000명까지 늘고 비용도 덩달아 뛰었다. 2016년 인공지능(AI)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AI를 이용한 리멤버의 자동 입력 비율은 99%다. 100%가 아닌 이유는 아직도 OCR 기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명함이 흐리게 찍혀 AI가 판독하기 어려우면 사람이 손으로 입력해요. AI가 알아보기 어려우면 자동으로 수기 입력팀에 통보하죠. 지금도 100명 이하의 수작업 인력이 있어요."
AI의 고도화도 수작업을 바탕으로 했다. "AI에 많은 데이터를 공급해 꾸준히 기계학습을 시켜야 OCR 인식률과 AI 판독률이 올라가요. 수작업은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결국 기술 고도화의 근간이 됐죠."
최 대표가 내건 회사의 모토는 '고객 와우'다. 와우란 고객이 내뱉는 감탄사다. "이용자가 써보고 편해서 탄성을 지르게 하자는 뜻이에요. 이용자가 감탄하면 이 서비스는 완성이죠. 즉 이용자가 감탄하는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 회사의 모토입니다."
편리함에 반한 리멤버 이용자는 약 400만 명이다. 그런데도 최 대표는 아직 배가 고프다. "멀었죠. 빨리 1,000만 명까지 가야 해요."
그는 경제활동 인구를 근거로 들었다. "미국 경제활동 인구가 1억6,500만 명이에요. 대학생 포함해 링크드인의 미국 가입자가 1억7,000만 명입니다. 미국 경제활동 인구는 링크드인을 모두 쓴다는 얘기죠. 한국의 경제활동 인구가 2,500만 명이니 리멤버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최 대표는 가입자를 늘리려면 리멤버가 두 번째 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진화는 리멤버의 주요 매출원으로 자리잡은 구인구직 서비스다. "명함 관리보다 구인구직 서비스를 더 키울 생각입니다. 다른 구인구직 중개서비스와 달리 리멤버는 직장을 다니는 경력직만 400만 명이 이용해요. 그러니 경력직 중심의 구인구직 서비스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죠."
경력직은 신입 채용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리멤버 자체 설문조사를 해보니 경력직의 85%가 적극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좋은 이직 기회가 있으면 옮기려고 하죠. 따라서 이들을 잡으려면 기업이 먼저 스카우트 제안을 해야죠. 이를 위해 리멤버가 인력채용 전문가(헤드헌터) 역할을 해요."
문제는 재직자들이 이직을 원하는 사실을 현재 회사에서 모르기를 원한다. 최 대표는 같은 이유로 링크드인이 국내에서 잘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인과 기업 모두 이직으로 연결되는 정보 공개를 꺼려요. 서양과 정서가 달라요. 모 대기업은 외국기업에서 이직한 사람들에게 링크드인을 쓰지 말라고 통보했어요. 링크드인으로 또 다른 이직 제의를 받을까 봐 우려한 것이죠."
이를 감안해 최 대표는 이용자의 이직 정보를 소속 회사가 보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이용자의 소속 회사가 개인 정보를 열람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능을 넣었어요. 이용자가 차단 회사를 선택할 수 있죠."
경력 채용을 원하는 기업은 확실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이직을 위해 정보 제공에 동의한 직장인들 정보를 볼 수 있다. "명함,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확인한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만 관련 정보를 볼 수 있죠."
지금까지 리멤버를 통한 이직 제의 건수는 300만 건이다. 월 20만 건 이상 이직 제의가 나갔다. "이직 제의를 받기 위해 약 120만 명의 이용자가 상세 이력 정보를 입력했어요. 이 정보를 기업 인사팀과 헤드헌터들이 보고 이직 제의를 하죠."
비용은 기업의 경우 정액형 연 1,000만 원, 채용될 때만 돈을 내는 성사형은 채용 1건당 약 400만 원이다. "헤드헌터를 이용하면 채용자 연봉의 15%를 수수료로 받으니 여러 명 채용하면 수천만 원이 들죠. 반면 리멤버 정액형은 채용 인원에 상관없이 연간 1,000만 원이니 경력직을 많이 뽑는 회사라면 비용을 아낄 수 있죠."
이런 장점 때문에 약 1만3,000개 기업이 리멤버의 경력 채용 서비스를 이용한다. "대기업, 외국기업, 스타트업 할 것 없이 많은 기업들이 경력 채용 서비스를 이용해요. 심지어 1년 동안 경력직 250명을 리멤버로 뽑은 기업도 있어요."
최 대표는 올해 초고액 연봉자를 겨냥한 '리멤버 블랙' 서비스도 새로 시작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겨냥한 채용 서비스죠. 연봉 1억 원 이상의 채용 정보를 한곳에 모아 제공합니다."
기업 인수에도 적극 나섰다. 지난해 자소설닷컴과 슈퍼루키에 이어 이달 초 임원급 전문 헤드헌터업체 브리스캔영어쏘시에이츠를 인수했다. 자소설닷컴은 국내 주요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자기소개서 전문 사이트다. "상반기 안에 자소설닷컴 회원과 리멤버 회원을 통합합니다. 기업들은 유망한 신입을 자소설닷컴에서 찾을 수 있죠."
이를 통해 생애 주기 전반의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자소설닷컴을 이용해 취업 기회를 갖고, 취직 후 리멤버를 이용해 이직을 하게 되죠."
덕분에 연 매출이 대폭 증가했다. "연 매출이 2021년 60억 원에서 지난해 200억 원으로 뛰었어요. 올해는 더 커지겠죠. 올해 흑자 전환을 예상해요. 내후년 매출 목표는 1,000억 원 이상입니다."
이 같은 가능성에 힘입어 2021년 투자도 크게 받았다. "2021년 말 1,600억 원을 투자받으면서 누적 투자유치액이 약 2,000억 원입니다. 투자비의 대부분은 AI 개발 등에 들어가죠."
해외 서비스도 확대할 방침이다. 최 대표는 현재 일본에서도 명함관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8년 일본에 진출해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었어요. 일본에서도 계속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