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원로 예술가 페터 바이벨의 대규모 회고전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이 이달 3일부터 5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미디어아트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 분야이기 이전에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다루는 예술이란 점을 보여주는 전시다.
페터 바이벨은 1960년대부터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큐레이터, 이론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에 영향을 미쳤다. 1999년부터는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글쓰기, 시, 비디오, 컴퓨터 기반 설치 작업 등 그의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바이벨은 지난 2일 열린 영상을 통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에 인사를 전했다. 그는 “예술은 작가의 행위이기도 하고 또한 관객의 참여 행위이기도 하다”라면서 “이 행위는 단순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기여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미디어와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이미지나 재현의 매체가 아니라 생산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가 인간 감각기관의 연장으로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또 세상을 생산하기도 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이 기기의 동작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컨대 1973년 작 ‘관찰을 관찰하기’는 3대의 카메라와 3대의 모니터를 한 지점을 향하도록 원형으로 배치한 작품이다. 원 중앙에 들어간 관람객은 모니터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자신의 얼굴 정면을 볼 수는 없다. 관찰자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는 언제나 자신의 관점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다원성의 선율’은 크고 어두운 공간에 11개의 영상을 띄워서 동시에 재생하는 작품이다. 작가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2년 동안 모으고 정리한 디지털 특수효과 선집이 스크린 위에 흐르는 동안, 관람객은 산업혁명부터 정보혁명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2세기 동안 이뤄진 과학기술의 발전을 눈으로 경험한다.
초기작 가운데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다. 1973년 작 ‘여자로서의 자화상’에서 바이벨이 자신의 눈이나 입을 신문이나 광고 사진의 한 부분으로 덮은 채 등장한다. 여성의 입술 사진으로 입술을 가리는 식이다. 오늘날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 등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활용되는 증강현실(AR) 기술을 예견한 듯하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실제로 보고, 체험해 보면 ‘아 그렇구나’라는 탄성을 내게 만드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