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수단체 분향소 접근금지' 유족 요구 기각... "광장은 열린 공간"

입력
2023.02.06 15:55
법원, 가처분 내용 전부 수용 안 해
"추모 이유 광장 배타적 사용 안 돼"
유족 "법원이 2차 가해 방치, 항고"

법원이 보수단체의 이태원광장 시민분향소 접근을 막아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들은 법원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즉각 항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 임정엽)는 6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신자유연대와 김상진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유족 측은 지난해 말 신자유연대가 분향소 바로 옆에서 집회를 하며 모욕적 발언을 하거나 현수막을 설치해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추모 감정(행복추구권)을 훼손한다면서 법원에 100m 이내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광장 특성을 감안할 때 분향소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집회를 전면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태원광장은 시민에게 개방된 곳으로, 일반적 장례식장ㆍ추모공원처럼 오직 유족 등이 경건하게 애도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라며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추모 감정이나 인격권이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할 때 관할 지자체나 경찰서 등에 정식 신고를 하지 않은 점도 참작됐다. 재판부는 “신자유연대는 지난해 11월 용산경찰서장에게 신고를 한 뒤 집회를 하고 있으나, 협의회는 정식 신고ㆍ허가 없이 분향소를 임의 설치했다”면서 “적절한 추모공간을 마련할 때까지 분향소를 유지할 예정이라는데, 불확정한 기간 동안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건 집회의 자유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신자유연대의 현수막 설치, 확성기를 통한 발언 등으로 추모 감정이 훼손됐다는 유족 측 주장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설치된 현수막과 주된 발언 내용은 특정 정치인ㆍ정당을 비판하는 것인 만큼 현수막 게시를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박탈하는 건 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문제 삼은 발언 역시 “신자유연대 소속 회원들이 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거나, 사망자ㆍ유족을 대상으로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유족들은 곧바로 항고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유족들은 2차 피해와 그 고통에 대한 일말의 공감의식 없는 법원에 좌절감을 느낀다"며 "2차 가해행위가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하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원의 결정은 2차 가해행위를 방치하겠다는 결정"이라며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부당하다"고 규탄했다.

나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