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손님이 직접 만드는 수제담배업소 불법 아냐" 왜?

입력
2023.02.06 11:40
"담배사업법상 '제조·판매'로 볼 수 없어"

손님들이 매장에서 제공된 담배 재료와 기계로 직접 담배를 만들어 사갔다면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7년 2월 경기 구리시에서 담배 제조기계를 갖춘 담배 판매점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담배 재료인 연초 잎과 필터 등을 판매했다. 손님은 재료를 구매한 뒤 기계를 이용해 직접 담배를 제조했다. 수제 담배 1갑(20개비)당 가격은 2,500원으로, A씨는 800만 원어치를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를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의 담배 제조업 허가 없이 담배를 제조하거나 관할 시장 등으로부터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지 않고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였다.

하급심 판단은 갈렸다. 무죄로 판단한 1심과 달리 항소심은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연초 판매자가 궐련 제조 설비까지 무료로 제공해 담배 가공 기회를 제공했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연초 판매자의 궐련 제조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자신의 영업점에서 실제 행한 활동은 손님에게 연초 잎 등 담배 재료를 판매하고 담배 제조시설을 제공한 것인데, 이런 활동은 담배 원료인 연초 잎에 일정한 작업을 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담배를 제조했다거나 제조된 담배를 소비자에게 판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담배 제조기를 구비하고 담배 재료를 판매하는 행위만으론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담배사업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그러한 영업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선 검사가 재료판매상의 행위를 담배 '제조' 및 '판매'로 평가할 수 있을 만한 특별한 사정까지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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