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지방자치단체가 적자로 골머리를 썩는 대표적 공공요금이다. 운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금껏 금기어였던 ‘무임승차’ 체계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 현행 65세인 무임승차 대상 연령을 70세로 높이는 것이 골자다. 지자체는 막대한 적자를 중앙정부가 보전해주지 않아 연령 상향은 어쩔 수 없고, 상향 주체도 정부가 돼야 한다고 항변한다.
무임승차 논란에 불을 지핀 건 서울시다. 지난해 말 여야가 지하철 무임수송 국비지원(PSO) 예산 확보에 동의했으나,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무산되자 시는 4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안 해주니 적자를 메우려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2017~2021년 무임승차로 인한 서울지하철의 연간 평균 손실액은 3,236억 원. 같은 기간 전체 연간 평균 적자(7,449억 원)의 절반(49.8%)에 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3일 페이스북에 “무임승차는 국가 복지정책으로 결정되고 추진된 일이니 기재부가 뒷짐 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자 5일엔 시가 자료를 통해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시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명시된 ‘공익서비스 제공 비용은 원인 제공자가 부담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정부로부터 무임승차 손실 비용의 약 70%를 보전받고 있는 점도 거론하며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재부는 도시철도인 지하철은 기본적으로 지방사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운영 주체인 지자체가 그에 따른 손실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임승차 손실 을 보전해 주면 다른 공공시설 운영 적자도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무임승차는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한 국가 정책이므로 조례 개정을 통해 지하철 요금 체계를 바꾸라는 기재부의 주장은 위법 소지가 크다고 재반박했다. 정부가 법을 바꿔 시행해야 할 일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이다. 시 관계자는 “노인복지법 시행령에 요금 할인율까지 명시돼 있어 지자체가 할인율 등을 임의로 결정하면 법을 위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해법은 ‘정부가 법을 개정해 무임승차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상향하라’는 것이다. 연령을 높이면 무임승차 손실이 연간 1,524억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시도 같은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65세 이상 무임승차 적용이 전국 모든 도시철도와 광역철도, 경전철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일부 지역만 조정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는 점은 서울시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무임승차 체계 개편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시 입장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도 즉각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한 윤상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서울시 무상급식 사태와 같이 우리 당에 대한 국민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멸적인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고령화에 맞춰 무임승차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노인 연령 및 소득에 따라 요금 할인율을 차등 적용하고, 대중교통 이용 횟수나 시간 등에 따라 할인을 제한하고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연령 상향이 능사가 아니라 할인율 차등 적용, 무료 이용 시간 제한 등 다양한 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