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대표님과 한 번만 미팅해보면 1억, 2억을 베팅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의 배경과 천재성 때문에." (브이글로벌 투자설명회 中)
'코인 광풍'이 불던 2021년 5월,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서울 논현동의 가상화폐거래소 '브이글로벌'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찰 수사로 드러난 브이글로벌의 사기 행각은 기존 가상화폐 사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대표 이모(31)씨 등이 다단계 방식으로 편취한 투자금만 2조2,000억 원대에 달했고 피해자들은 5만2,8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씨는 지난달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을 확정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운영진 3명에게는 징역 4~14년이 확정됐다. 범행 규모나 주범들의 형량을 보면 역대 최대 코인 사기로 꼽히지만, '거창한 평가'가 무색할 만큼 범행 수법은 매우 단순했다. 구체적인 사업 모델도 없이 "600만 원짜리 계좌를 개설할 때마다 수익금을 3배로 돌려준다"는 약속이었다. 5만 명 넘는 피해자들이 이런 허황된 약속을 믿고 노후자금을 털어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브이글로벌은 그럴듯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브이캐시'라는 코인을 발행해 피해자들이 600만 원을 입금하면, 그 대가로 1800만 브이캐시를 배당했고, 상당 기간 거래소에선 반복적인 매도·매수 작업을 통해 '1브이캐시=1원'의 균형을 유지시켰다. 원화로의 환전도 사업 초기 몇 달 동안은 원활하게 진행돼, 처음엔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수억 원대 이득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추가 투자금을 받는 것 말고는 마땅한 수익 창출 전략이 없었기에, 브이글로벌에 '돌려막기' 의심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했다. 업체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2020년 7월부터 테헤란로 일대 사무실과 호텔, 관광버스와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중장년층을 상대로 수차례 설명회를 열었다. 이들은 브이글로벌이 ①특정금융거래정보법 시행을 대비해 회원을 모으는 단계이며 ②사업성을 알아본 재벌가 주주들이 이미 수천억 원을 투자했고 ③은행에 원금 전액이 예치돼 있기에 일반 투자자들은 안전하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브이글로벌은 공신력 있는 기관을 내세우기도 했다. "한국은행 및 유명 통신사와 함께 전자지갑 구축 업무협약을 맺었고, 신탁계약을 맺은 은행에서 일주일에 두 번 실사를 나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문의전화 몇 통이면 간단히 드러날 거짓이었지만, "이미 큰돈을 번 투자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진실을 가려버렸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건 한상준 변호사는 "많은 투자자들이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나도 좋은 타이밍에 이득 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 매몰됐다"고 말했다.
브이글로벌의 핵심 운영진 대다수는 가상화폐가 아닌 다단계 전문가였다. 다단계 사기로 형사처벌 전력까지 있던 이들은 브이글로벌 사업 구상에도 철저한 피라미드 직급구조를 적용했다. 투자자를 ‘VIP → 매니저 → 코치 → 마스터 → 슈퍼바이저 → 디렉터 → CEO → 체어맨’이라는 여덟 등급으로 구분한 뒤, 하위 투자자를 모집할 때마다 투자금의 20%인 120만 브이캐시를 추천수당으로 줬다. 이외에도 후원수당, 추천매칭수당 등 다양한 종류의 인센티브를 부여해 투자자들을 사업 운영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다단계 조직 특유의 보상구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상위 직급을 동경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최상위 3개 직급자를 ‘리더스클럽’이라고 칭하면서 총매출의 1%를 수당으로 지급했고, 승격할 경우 등급별로 50만~1억 브이캐시를 성취금으로 뿌렸다. 본사 3층에는 상위 투자자들만 쓰는 사무실을 둔 채 지하 강연실이나 호텔에서 일반 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행사 때마다 영어로 사업을 소개하고 자체 통역하는 등 동경심을 갖도록 '허술하게나마'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설명회는 브이글로벌의 모순된 사업구조를 정당화하는 자리였고 '대표 이씨의 영향력'을 회원들에게 세뇌하는 통로로 쓰였다. 2021년 2월 청주 강연에서 한 '디렉터'는 "대형 거래소가 엄청난 정보력을 통해 이 대표를 알아보고 우리를 택했다. 수당 지급도 이 대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모든 것은 이 대표의 뒷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씨가 삼성가 손자라는 헛소문도 돌았다. 한상준 변호사는 "상위 직급자들이 교주처럼 이씨를 추켜세우면서 오히려 사업이 확장된 측면이 있다"며 "처음부터 공모한 축에 속하진 않았더라도 이들 역시 사기에 고의적으로 가담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에게 '베일에 가려진 신'으로 불리던 이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브이글로벌 관련자들의 휴대폰과 컴퓨터를 교체하도록 했고, 직원들에게 각종 계열사를 독립된 회사로 진술하도록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재판에선 범행 책임을 전가하려고 다른 구속 피고인에게 접촉을 시도하다가 구치소에 발각되기도 했다. 브이글로벌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그는 음지에서 활동하던 트레이더(고객 간의 주식이나 채권 거래를 중개하는 사람)였다고 한다.
이씨를 포함한 운영진 4명이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반쪽짜리 응징"이라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 영입을 도맡은 이들 다수가 여전히 기소되지 않았을뿐더러, 1,000억 원대 추징 명령을 내린 1심과 달리 2심과 대법원은 "범죄로 얻은 수익이 기존 자산과 구분되지 않아 추징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킨 다단계 범행에서 계좌에 들어온 금액 출처를 모두 구분하라는 것은 사실상 범죄수익을 환수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런 판단이 계속 나온다면 형량보다 수익이 중요한 경제사범들이 더욱 활개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