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간음죄(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를 발표했다가 뒤집은 배경엔 부처 간 소통 단절이 있었다. 오해의 핵심은 ‘검토’라는 단어의 쓰임이다.
법무부가 여가부에 전달한 공문엔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하여 성폭력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라고 돼 있었다. 이 공문을 보고 여가부는 “도입 검토”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반대한다”는 의미였단다.
□ 윗선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관료들은 확정된 표현을 쓰길 꺼린다. 그래서 보통 ‘신중한 검토’는 추진하게 않겠다는 뜻이 된다. 듣는 기자들도 그리 이해한다. 반대로 ‘적극적 검토’는 추진하겠다는 뜻이고, 그냥 ‘검토’는 긍정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정도로 해석한다. 이런 뉘앙스는 사실상의 불문율인데, 법무부는 공문에서 ‘신중한 검토’ 대신, ‘종합적 검토’를 썼다. 공적 의사소통의 불문율을 깬 표현이다.
□ 이 사건에선 부처 간 권력관계도 보인다.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분신이자 최고 실세인 한동훈 장관이 이끈다. 여가부는 잘 알다시피 윤 대통령이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부서다. 법무부는 자신들이 뜻을 잘못 전달하고도,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은근 여가부를 탓했다. 부처 간 의견 교환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담당자들이 터놓고 논의 한번 안 했다는 점도 황당하다. 그럴 분위기조차 아닐 정도로 정부 구조가 경직됐다면 우려스럽고 한심한 지점이다.
□ 이번 사건으로 ‘비동의 간음죄’ 논의는 검토가 아니라, 아예 퇴출되는 모습이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흐름과 반대다. 지난 3일 일본 법무부도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강간죄를 물을 수 있도록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절할 틈을 주지 않거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공포를 느끼는 상황, 지속적 학대로 ‘싫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심리상태 등 8가지 상황이 강간죄로 인정된다. 한국에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서 검토조차 않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