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의식

입력
2023.02.06 00:00
27면

월든의 은둔자 소로는 아침의 숭배자였다. 그는 하루 중 가장 기억할 가치가 있는 때는 아침이며, 우리가 아직 속되게 하지 않은 이 성스러운 빛의 시간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삶에 절망한 자라고 했다. 그는 우리 삶이 자연의 단순함과 순수함을 닮게 하라는 아침의 초대에 응하는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의식은 월든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오두막의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앉아 자연의 가장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딱히 부지런한 사람도 아닌데 나는 일찍 잠이 깨는 편이고 같이 사는 식구들은 아침잠이 많아서, 특히 주말에는 혼자 보내는 아침 시간이 많다. 나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 나름 아침을 여는 의식들을 만들어 왔다. 아침에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잠시나마 내가 총명해지는 착각이 들게 해주는 커피를 만들고, 맑은 날에는 동쪽으로 난 식탁 앞 창으로 동이 터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그 의식의 중요한 일부다. 따뜻한 계절에는 뒷마당에 나가 맨발로 잔디를 느껴 보기도 한다.

요즘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아침의 의식을 만들려고 노력 중인데, 그게 쉽지 않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몸을 돌려 침대 옆에 둔 휴대폰을 집어 드는 습관이 생겼다. 액정의 밝은 빛에 눈을 찌푸리면서 이메일이나 문자를 확인하고,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세상의 소식을 빠르게 화면을 스크롤하며 훑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굳이 소로의 지혜를 빌리지 않아도 아침을 여는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옆의 아내가 뒤척거리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휴대폰을 내려놓겠는가. 아침에 가장 먼저 읽는 것들이 밤새 리셋된 두뇌에 새로운 회로를 연결하고 그날 하루 내 기분과 생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텐데, 그것을 스스로 통제하지 않고 알고리즘에 맡겨 두는 게 현명한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그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내가 아끼는 책을 침대 옆에 두고 잠이 깨면 휴대폰 대신 그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펴서 읽는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 침대 옆에 놓인 책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인데,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정치비평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과 주변의 자연에 대한 오웰의 관찰이 담긴 소품들을 읽는다. 특히 영국의 나쁜 날씨가 왜 사실은 이상적인지를 한 달 한 달 따지는 '나쁜 기후가 최고', 완벽하게 영국적인 펍을 묘사하는 '물 속의 달', 평범한 두꺼비에게서 봄의 기적을 보고 왜 도시화와 산업화의 시대에 자연의 순환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소중한지 역설하는 '평범한 두꺼비에 대한 생각들' 등을 즐겨 읽는다. 레베카 솔닛은 '오웰과 장미'에서, 전쟁과 대공황의 시대에 늘 가난과 병을 달고 살았던 오웰이 전체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비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평범한 일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찾은 기쁨의 순간들이었다고 관찰했다. 거짓과 환영이 끊임없이 우리를 현혹하는 시대, 오웰의 에세이들이 '성스러운 빛의 시간'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지난 3년, 얕은 학식과 글재주로 독자들과 아침을 같이 여는 호사를 누렸다. 귀한 지면을 내준 한국일보,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