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직장인 황모(37)씨는 최근 전용면적 59㎡ 아파트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했다. 전셋값은 기존 3억 원에서 2억8000만 원으로 낮췄다. 계약갱신청구권도 사용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먼저 더 살아달라고 요청해 서로 합의하에 계약을 연장했어요. 2년 뒤 전셋값이 많이 오르면 그때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생각입니다."
최근 전·월세시장에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건수가 1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서울·경기·인천에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건수는 6,574건(집토스 집계)으로 2021년 12월(1만2,445건)에 견줘 47%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합의해 계약을 연장한 '합의 갱신' 계약은 9,087건에서 1만1,611건으로 27% 늘었다.
이런 현상은 '세입자 모시기'란 말이 나올 만큼 전세시장이 임차인 우위로 재편된 영향과 무관치 않다. 최근 전셋값 급락으로 신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밑도는 역전세 아파트가 쏟아지다 보니 전세금 일부를 돌려주더라도 세입자를 그대로 붙잡으려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 세입자로선 합의 갱신으로 일단 전세 계약을 연장하고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 뒤 전셋값이 급등할 때를 대비해 아껴두는 게 유리하다. 이렇게 하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6년을 살 수 있어서다.
2020년 7월 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임대차3법)으로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1회에 한해 집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다. 전·월셋값이 급등해도 임대료 5% 내에서 세입자의 4년 거주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 계약 중 32%(1,481건)는 전셋값을 낮추는 '감액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 같은 기간(76건)과 비교하면 19배 이상 급증했다.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세입자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요즘은 전셋값을 깎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2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추가비용 부담 없이 자유롭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갱신청구권 사용이 관행상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한 비용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합의 갱신 계약보다 유리하다. 서울 관악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 구하는 게 어렵다 보니 요즘은 집주인이 어떤 형태로든 계약을 연장하겠다는 경우가 많다"며 "갱신청구권을 꺼리던 1년 전과 상황이 180도 뒤집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