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한 이른바 '영끌족'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진 영끌족의 원금 상환을 유예해 주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는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정부가 나서 깨뜨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가 내려준 동아줄은 두 가지다. 우선 총부채상환비율(DTI) 70%가 넘는 차주(주택가격 9억 원 미만)에게 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을 최대 3년간 유예해 주는 지원책이다. DTI는 '연간 주담대 원리금 상환액+기타대출 이자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DTI 70%는 연소득이 5,000만 원인 차주가 원리금 상환액으로 3,500만 원을 지출했다는 뜻이다. 은행권은 그간 상환 유예 대상을 '질병·실업 등 재무적 곤란사유가 발생한 차주'로만 한정했는데, 정부는 여기에 '소득 대비 많은 대출을 받은 차주'도 포함시킨 셈이다.
다른 하나는 대출을 갈아탈 때 기존 대출시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겠다는 지원책이다. DSR은 '연간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지난해 7월부터 가계대출액이 1억 원을 초과할 경우 4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대환 대출을 받는 차주에게 대출 한도가 줄어들지 않도록 기존 대출을 받은 때로 DSR을 적용해 주기로 했다.
이에 무주택자들 사이에서 영끌족을 향한 지원책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혜택은 영끌족이 보고, 문제가 터지면 결국 세금으로 막아준다' '금융 온정주의'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과거 집값 폭등에 따른 이득은 매수자가 보는데, 집값 급락과 고금리 부담은 왜 타인이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나눠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실제 은행권은 원금상환 유예 지원책에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돈을 못 갚을 정도로 대출 상환이 부담되면 담보물을 팔아야 하는 것이 시장 논리"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주택을 구매한 사람과 없는 사람, 대출을 받았던 사람과 새로 받을 사람 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앞으로도 '급격한 금리인상 땐 이자만 갚도록 정부가 나서겠지'라는 차주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정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2년 만에 0.5%에서 3.5%까지 오른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며 "합리적 차주라도 이 정도 급격한 금리인상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정부가 특수한 상황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의 사정도 고려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고금리 차주들에게 상환을 유예해 주고 싶어도 금리인상은 재무적 곤란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유예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DTI라는 객관적 기준을 정부가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DTI 70%는 '중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 후 남는 금액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 논란에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원칙적으로 주담대가 부담되는 차주는 집을 파는 것이 맞다"면서도 "주택거래 냉각기에 집을 팔 수 없는데 고금리 부담을 진 차주들의 흑자도산을 막으려 당국이 예외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