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용임 님의 곡 중에 '도로남'이라는 노래가 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남'과 '님'이라는 글자의 차이가 점 하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겨우 획 하나의 차이지만 그 뜻은 거의 반대되는 말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재치 있는 노랫말이다.
여기서 '점' 하나의 차이라는 표현은 유전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포인트일 수 있는데, 유전자 조절의 대표적 원리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DNA라는 물질에 암호화된 설계도처럼 기록되어 있는 유전자들이 실제로 각자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DNA로부터 RNA라는 물질이 복사되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과정을 '유전자 발현'이라고 부른다.
이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는 DNA에 '점' 하나를 찍거나 지우는 것처럼 '메틸화'라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메틸화'란 말 그대로 DNA를 이루는 염기서열 구조 일부에 '메틸기'(methyl group)를 붙여 구조적으로 표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DNA에 부가적인 변화를 만들거나, 혹은 구조를 떼어 내는 방식은 후성유전학 혹은 후생유전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서 유전자 발현을 연구하기 위해 활발하게 이용하는 현상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염기서열이라는 형태로 정보를 저장하고 있지만 저장된 정보는 발현되기 전까지는 저장된 기록일 뿐이므로 실제로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유전자 발현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DNA로부터 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 첫 번째 과정에는 마치 전기전자 제품의 전원을 켜거나 끄거나 할 때처럼 일종의 스위치가 필요하다.
그중 대표적인 스위치의 하나가 '메틸화' 스위치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유전자가 기록되어 있는 DNA 부위에 '메틸화'가 되어 있으면 해당 유전자들은 마치 스위치가 꺼져 있는 것처럼 유전자 발현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메틸화'가 사라지면, 즉 메틸기 구조가 염기서열 구조에서 제거되면 해당 유전자 발현이 가능해지는 상태가 되는 방식의 시스템이다.
모든 세포의 유전체에 기록되어 있는 수만 개의 유전자들이 어떤 세포에서 어느 시점에 어떤 조합으로 작동해서 각 세포의 특성을 가지게 하고, 다양한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개체를 구성하게 할지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바로 유전자 발현 조절이다. 따라서 '메틸화' 같은 스위치들은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스위치 시스템은 음식을 포함한 다양한 외부 환경에 의해서 강한 영향을 받기도 하며, 이렇게 후천적으로 변화된 스위치 구성이 후손에게 유전되기도 하므로 그 중요성이 갈수록 주목받고 있다.
DNA의 '메틸화'만큼이나 히스톤 단백질(DNA 가닥을 감는 실패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아세틸화'도 핵심 스위치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는데 '알코올'과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가령, 우리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아세트산이 아세틸-CoA로 변한 후 히스톤의 '아세틸화'에 활용되며,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주요 신경전달 물질들은 히스톤에 직접 결합함으로써 감정이나 중독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건강기능식품들이 우리 유전자의 설계도면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