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국·일본 외교 당국자 협의가 30일 열렸지만 진전이 없었다. 지난 12일 한국 정부가 일본의 피고 기업 대신 한국 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을 공개한 뒤 당국자 협의가 두 차례 열렸지만,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들이 배상 참여에 부정적인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3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일 정부가 피고 기업의 금전적 부담 등 직접 관여를 피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미경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도 피고 기업의 직접 참여는 어렵다고 인정하면서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창의적인 해법’ 또는 ‘간접적 참여’의 방법이다. 요미우리는 “피고 기업 이외 일본 기업의 자발적 배상 참여에는 일본 정부가 반대하지 않고 있으며, 게이단렌이 재단에 기부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 자체 자금을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에서 ‘피고 기업이 참여했다’고 인정받기는 어렵다.
피고 기업은 일본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사장은 지난해 말 언론 인터뷰에서 “해결은 국가 간에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피고 기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만 재단에 기부하거나 게이단렌이 단독으로 기부하는 방안 등이 최종안으로 결정된다면, 한국 정부는 원고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 때처럼 일부 피해자만 배상금을 받아 일본이 원하는 ‘최종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종 해결을 위해선 피해자와의 화해가 필요하다”며 “한국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존중한 방안을 내놓은 만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피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용인하도록 결단을 내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결단이 마지막 해법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