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주요 도시들을 잇는 광역도로의 방음터널 10개 중 6개 이상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크릴 수지 등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소재를 썼기 때문인데 국토교통부는 안전 지침에 구멍이 있는데도 손보지 않고 사실상 방치해왔다.
감사원은 31일 이 같은 실태를 담긴 '광역 교통망 구축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광역 교통망이란 수도권 등 대도시권의 교통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짓는 도로, 철도, 터널 시설을 뜻한다. 정부는 광역교통시설 구축에 연간 16조원(2023년 예산 기준)을 투입한다.
감사원이 수도권 광역도로의 방음터널(보·차도 분리 방음벽 포함) 73곳을 점검해보니 64.4%(47곳)가 아크릴 수지, 폴리카보네이트 등 불에 잘 타는 재질의 방음판으로 시공했다. 반면 터널 구조체(방음판을 지탱해주는 구조물)를 내화처리(불이 붙지 않도록 특수 페인트를 바르는 등 조치하는 것)한 터널은 1곳에 불과했다.
감사원은 "터널형 방음시설에서 불이 나면 삽시간에 불길이 번져 도로 이용자가 밖으로 빠져나갈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내화처리되지 않은 구조체는 고온 탓에 무너질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실제 지난달 29일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사고는 5톤 폐기물 운반용 트럭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로 옮겨 붙어 순식간에 번지면서 전체 터널(830m)의 70% 이상(600m)을 태웠다.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4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위험천만한 방음 터널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언제든 또 다른 '제2경인고속도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방음 터널의 화재안전 기준이 미비한데도 이를 개선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행 도로방재지침에는 방음판의 재질을 고려한 방재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
감사원은 국토부 장관에게 터널 내 화재 발생 시 충분한 피난·대응시간을 확보하고 시설물의 손상이나 붕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화재안전 기준을 수립하라고 통보했다.
국토부는 감사원 지적을 수용해 현재 방음 터널 화재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