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과 홍운탁월, 옛 그림 속 달에 담긴 착시기법

입력
2023.01.30 20:00
25면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달의 존재를 부각하려고 동원된 옛 그림의 기법들
추상표현주의와 동시 밝기 대비 착시를 활용한 기법
무욕의 달을 통해 확인하는 새해의 현실 정착 다짐

명색이 아파트라지만 오래된 집이라 벽에서 한기가 새어 나온다. 올겨울은 특히 심하다. 피크닉 매트, 캠핑 매트를 벽에 세우니 한결 낫다. 그래도 연탄불을 때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큰 호사인가. 이번 봄은 틀림없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겨울이 덜 추웠다면 봄은 여름의 나팔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온의 차이에서 오는 대비가 계절을 분명하게 해주듯, 그림에서도 대비는 매우 중요한 기법이다.

첫 번째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대접을 받는 화가가 그린 것이다. 바로 5만 원권 뒷면의 '월매도(月梅圖)'를 그린 어몽룡(1566~1617년)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최소한 두 가지 대비가 담겨 있다. 첫째, 달의 윤곽을 자로 재어보니 완전한 원이다. 반면, 아래에 묘사된 매화 가지는 불규칙하게 뻗어 있다. 보름달의 완전한 대칭성은 매화 가지 모양의 불규칙성과 대비가 되어 역동의 긴장이 흘러나온다. 완전한 원을 맨손으로 그리기는 어려웠을 테고, 아마도 어떤 동그란 인공물을 엎어놓고 그렸을 것이다. '그렸다'는 표현도 어색한데 작은 점들의 타원형으로 보아, 화가는 먹물을 붓에 적셔 흩어 뿌려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그림을 이렇게 그렸다. 바닥에 캔버스를 깔아놓고 그 위에 물감을 흩어 뿌리거나 심지어 물감을 양동이에 담은 채 여기저기 부어서 그림을 완성했다. '추상표현주의'라고 하는 이 기법은 미술계에서 혁신적이라고 대접받는데 어몽룡이 원조라고 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이것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둘째, 달의 밝음은 주변의 어두움과 대비된다. 밝음은 어두움이, 어두움은 밝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옛 그림의 수묵화는 흰 천 또는 종이 위에 먹의 농담만으로 그리는 것으로, 가장 밝은 것은 천 또는 종이의 바탕 자체라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달의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달 주변에 어두운 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내는 것으로, 홍운탁월(烘雲拓月)이라고 한다. 이 현상의 효과는 두 번째 그림의 동시 밝기 대비 착시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의 그림에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부터 달의 밝음을 이렇게 표현했는지 알기 어렵다. 다만, 조선 시대 중기에 활약했던 이경윤(1545~1611년)은 어몽룡보다 21년 먼저 일찍 태어났는데, 그가 그린 달 그림이 좀 더 먼저라고 짐작한다. 이경윤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에서, 한 선비가 보름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뜯고 있고, 시중을 드는 소년은 차를 끓이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달 주변을 어둡게 해서 달을 밝게 표현하고 있다. 홍운탁월 기법은 조선 시대 후기에 활동했던 김두량, 김홍도, 정선, 신윤복 등의 그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도자기에 표현된 달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는 기법이지만, 이것은 밝기 대비라는 현상을 이해하고, 이렇게 그린 달을 밤하늘의 달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말하자면, 달을 상징하는 발명품이자 예술 감상의 관습인 것이다.

종종 달은 예술과 문학에서 이상(理想)으로 상징되곤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달은 저 하늘 높이 있어 다가갈 수 없고, 현실은 매화나무처럼 삐뚤빼뚤하다. 현실이 아닌 이상을 꿈꾸는 우리들은 자신의 삶에서 외지인인 것이다. 달은 멀리 있어 소유할 수 없지만, 무욕의 감상으로 마음속에 들어오게 할 수는 있다. 올해는 욕심을 줄이고 현실에 정착하기를 다짐해본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