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 시간이 11월은 97시간, 12월은 90시간이었습니다. 한 달에 거의 240시간씩 일했죠. 3일 연속 퇴근을 못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포괄임금제라 야근·휴일수당을 받지 못했습니다."
직장인 A씨는 지난해 말 연장근무에 시달렸지만, 정해진 월급 외 수당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실제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사전에 정한 일정액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받는 포괄임금 계약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행법을 넘어서는 주52시간 이상 근무에 대해서도 추가수당이나 휴가는 일절 없었다. 근무기록을 따로 모으고는 있지만, 업계가 좁아 신고는 언감생심이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이른바 '공짜 야근'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A씨처럼 포괄임금제(포괄임금·고정 초과근무 계약)로 계약을 했거나, 사측의 관행에 따라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노동개혁 과제로 내세우며 신고센터를 운영할 방침이지만, 사실상 노동자의 신고에만 기댄 개혁 방안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2월 7~14일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2%가 '연장·휴일·야간근로 등 초과근로에 대해 가산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고 29일 밝혔다. 수당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경우는 46.9%, 초과근로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1.1%였다.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은 업종별로는 사무직, 직급별로는 중간관리자급이 많았다. 사무직과 중간관리자·실무자급은 84% 정도가 초과근로를 하고 있었지만, 이 중 40%가량은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타 직종(생산·서비스직)·직급(상위관리자·일반사원급)보다 추가근무는 많지만, 수당은 더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공짜 추가근로를 만드는 것은 포괄임금제를 비롯한 부조리한 관행이었다.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 중 포괄임금제 대상자는 34.7%나 됐다. △관행상 미지급(29.4%) △초과근로수당 한도액을 정해두고 지급(19.4%) △교통비·식비 등 실경비만 지급(12.5%)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직장인 B씨는 "고정OT(초과근로)를 넘겨 일하면 수당을 더 지급해야 하는데, 회사가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출퇴근 시스템을 조작해 이른 퇴근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이렇게 편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포괄임금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직장인은 70.9%에 달했다.
정부도 다음 달 2일부터 '포괄임금·고정OT 수당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포괄임금제 개선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직장갑질119는 "노동자는 신고 시 회사로부터 받을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는데, 초과노동을 입증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어 신고부터 쉽지 않다"며 "당사자가 신고하는 방식의 센터 운영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포괄임금제는 시키는 대로 일은 더 하지만, 초과근로수당은 지급하지 않는 형식으로 운영돼 문제"라면서 "근로기준법의 원칙이 '초과근로수당을 사후 정산해 일한 만큼 지급하라'는 것인 만큼 포괄임금약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