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경영전문대학원(MBA)으로 유명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졸업 필수 과목인 운영관리(OM) 시험에 응한 결과는 최소 ‘B-‘ 학점이다.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 시험인 헌법과 세금 및 불법행위 등을 포함한 내용의 에세이 작성 테스트에선 합격점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의료기관 앤서블헬스 연구진 주관 하에 3단계로 실시된 미국의사면허시험 성적 역시 양호했다. 세부적인 시험 항목에선 미흡한 부분이 체크된 가운데서도 예상치를 웃돈 성적표임엔 분명했다. 모두 인간의 영역이지만 사람의 흔적이 아니었기에 전세계 이목은 쏠렸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오픈AI에서 대화형 AI 모델로 선보인 ‘챗GPT’의 최근 족적이다.
챗GPT 열풍이 거세다. 당장 지난해 말 수면 위로 등장한 이후, 진출한 인간계 주요 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완성형 챗GPT가 등장할 경우, 지구상에서 사라질 직업과 살아남게 될 직종으로 구분해 점쳐지고 있을 정도다. 챗GPT의 확장성을 확인한 마이크로소프트(MS)에선 오픈AI에 수년간 최소 100억 달러(약 12조3,000억 원)의 통 큰 투자 보따리까지 풀겠다고 나선 상태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23일(현지시간) 블로그에 "오픈AI와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며 "최첨단 AI 연구를 진전시키고, AI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만들려는 공동의 야망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MS와 오픈AI의 이번 파트너십 체결은 2019년과 2021년에 이어 세 번째다. MS측에선 구체적인 투자 규모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블룸버그 통신에선 소식통을 인용, 향후 수년 내 총 100억 달러 선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글 또한 분주하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구글에선 챗GPT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미 현직에선 물러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을 비롯한 창업자들에게 긴급구조요청(SOS)까지 보냈다.
지난해 11월30일, 출몰한 챗GPT의 행보는 초반부터 눈에 띄었다. 인간의 대화와 유사한 형태로 문장 작성이 가능한 성능을 장착하면서다. 무엇보다 이용자 질문에 맞춤형 답변까지 가능한 ‘GPT-3.5’ AI 언어 모델이 탑재되면서 ‘세(勢)’ 확장에 날개를 달았다. 기세는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투자 리서치 기업 ARK 인베스트에 따르면 챗GPT의 글로벌 일일 사용자는 출시 1주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40일이 지나선 1,000만 명대에 진입했다.
일각에선 수직 상승세에 들어선 챗GPT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계가 대표적이다. 출중한 기능으로 무장한 챗GPT가 광범위한 부정행위에 이용될 수 있는 데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중심의 교실 교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단 시각에서다. 미국 뉴욕주 당국은 “중고생들의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달부터 공립학교내에선 근거리무선통신(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한 챗GPT 접속부터 차단했다. 조지워싱턴대 등 일부 대학은 교외에서 작성, 제출해왔던 오픈북 과제도 제한했다.
학계 내부에서 또한 챗GPT 이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이와 관련,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최근 챗GPT 등 인공지능의 연구 논문 작성 보조 허용 여부에 대해 온라인 구독자 3,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57.7%(2,085명)는 반대, 36.9%(1,335명)는 찬성했다고 26일 밝혔다. 네이처에선 챗GPT를 비롯한 대화형 AI는 저자로 허가하지 않을 방침이다.
2015년 비영리 회사로 설립된 오픈AI는 2020년 심층학습(딥러닝) 기반의 AI 모델인 GPT3을 선보였다. GPT3는 최대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이용, 사용자 질문에 가장 적합한 대답을 하도록 설계됐다. 오픈AI는 조만간 이보다 한층 더 진보된 모델인 ‘GPT4’를 공개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이 프로젝트 투자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피터 틸 클래리엄 캐피털 사장,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회장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