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노동과 연금, 교육 개혁을 국정 3대 과제로 하는 윤석열 정부가 5년 임기의 국정 방향을 구체화하고 추진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여당 전당대회와 대표 선출,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기소 문제 등 정쟁 현안 보도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국정 혁신에 대한 심층적 숙의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협소해 보인다.
혁신의 시간은 미래로 확장하는 원심력과 과거로 회귀하는 구심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충돌의 시간이다. 이들 간의 대화와 조정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 연금, 교육 문제는 기존 질서에 얽혀있는 이해집단의 집단주의가 혁신의 실현을 막고 있어, 매우 예민한 문제다. 그래서 언론은 정책 문제보다 위험부담도 적고, 수용자의 눈길을 끌기에도 편한 정쟁 보도로 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어려운 정책 문제에 정면으로 승부할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사실 의심스럽다.
이 시대의 노동, 연금, 교육 혁신은 20세기의 전통적 질서에 대한 21세기 새로운 질서의 도전, 그리고 이에 대한 응전의 문제다. 20세기 대량생산 산업사회의 노동 정책은 21세기 스마트산업 시대의 노동과 일의 성격 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20세기형 복지제도로 만들어진 현행 연금정책은 21세기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 맞는 복지 정책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함이 당연하다. 20세기 산업사회 시대의 표준화되고 전문화된 인력의 대량 육성을 위한 교육정책은 이제 실효성이 의심된다. 21세기가 기대하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모두 보수와 진보의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래서 해결하기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다.
정당과 정치인이 내부 권력 투쟁만 일삼는 것은 분명히 문제지만, 정치의 본질이 권력에 관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언론과 대학, 언론인과 지식인의 역할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확인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정파적 정보의 확대 재생산만을 하고 있다면 이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언론인과 지식인이 아니다. 언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빠르고 자극적인 정보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학의 지식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글의 신속한 대량 정보를 따라갈 수 없고,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언론인과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국정 혁신에 유튜브와 구글보다 훨씬 더 큰 영감과 영향력을 끼칠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우리 언론과 대학이 노동, 연금, 교육 등 미래 의제를 제대로 다룰 준비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언론과 대학이 이들 현안에 대해 충분한 학습을 하고 있으며, 건강한 집단지성과 이기적 집단주의를 구별하여 균형적이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국가 미래를 위한 실제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 지성을 양성하고 지원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과 대학, 언론인과 지식인의 자리는 없다.
때로는 광야에 서서 눈앞에 닥친 위기를 용감히 외치는 선지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연구실에서 묵묵히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진지한 연구자의 역할도 요구된다. 현실 세계에서 작은 혁신을 실험하고 그 결과로 구체적 처방을 제시하는 실천가의 활약도 필요하다. 우리 언론과 대학은 언론인과 지식인이 이러한 역할을 신실하게 준비하고 수행하도록 돕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중요한 국정 혁신을 정치인들만의 리그에 맡기는 것은 매우 불안하다. 새해에는 우리 언론과 지식인의 정치와 정책의 진보를 위한 의미 있는 일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