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26일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12일 외교부 주최 토론회에서 "일본 전범기업 대신 우리 기업이 내는 기부금으로 배상할 것"이라는 정부안에 반발해 마련한 자리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단의 전범진 변호사는 "가해자인 일본 기업과 관계없는 국내 기업이 기부해 배상금을 마련할 경우 '뇌물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해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리다.
현재 외교부의 구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혜택을 입은 포스코 등 국내 기업을 주축으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금을 내면 재단이 전범기업의 채무를 넘겨받아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식이다. 양국 정부가 재단 기금 조성에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전범기업의 참여는 불투명하다.
핵심 쟁점은 제3자인 재단이 채무를 인수할 수 있는가 여부다. 이른바 병존적(중첩적) 채무인수로, 민법 469조는 제3자의 채무 변제를 허용하면서도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단서로 달았다.
다만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법정 채권인 만큼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어도 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외교부 토론회에서 최우균 변호사는 “법정 채권은 사적자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가 반대해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게 유력한 학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전 변호사는 “다수설이나 통설이 아닌 유력한 학설을 근거로 민법 채권 일반이론을 무시하고 국내 재단을 통한 3자 변제를 인정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현재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3자 변제로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재판청구권’을 심히 해치는 행위이자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소원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전범기업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3자를 통한 변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단이 채무를 인수하려면 전범기업도 채무인수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전범기업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채무자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는 특히 뇌물죄와 관련 “가해자인 일본 기업과 아무 관련 없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단에 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기부를 하는 경우 정부에 부정한 청탁에 관한 묵시적 합의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안 자체에 절차적 흠결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재성 변호사는 “외교부는 피해자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포괄적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민관협의회에는 애초 피해자 측 일부 그룹만 참여했고 그마저도 총 4차례 회의 중 2차까지만 참여하고 탈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관협의회 탈퇴는 외교부가 피해자 모르게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라며 “박진 장관 등 외교부 관계자들이 피해자와 만날 때도 소통보다는 일방적으로 정부 계획이나 입장을 설명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