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투신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분.명.히. 죽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강이 흐르고 익숙한 도시가 보인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세계, '제2한강'이다.
권혁일의 장편소설 '제2한강'은 민감한 소재인 자살을 조금은 편안하게 풀어낸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배경 설정 덕분이다. 제2한강 마을 주민은 모두 자살한 사람들이다. 매일 30~40명의 신규 입주자가 들어온다. 소설은 신규 입주자인 서른 살 직장인 '홍형록'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과정을 따라간다.
자살 후의 생이 직면하는 것도 '다시 자살'이다. 완전한 소멸로 가는 '다시 자살'만이 마을을 떠날 수 있는 길이라서, 모든 주민이 고민한다. 언제 떠날 것인가.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한 번 죽음에 "성공"했기에, '다시 자살'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고뇌의 시간은 각자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친구를 잃은 경험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자살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위로를 품고 있다. 특히 10년 만에 '제2한강'을 떠나기로 한 '이슬'의 말이 마음에 꽂힌다. "내 삶에서 내 잘못이 아니었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는 거야. 내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게 꼭 내가 못나서, 내가 멍청해서, 내가 바보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서만은 아니란 걸 깨닫는 거지."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그런 메시지를 안고 있다. 자살이 결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는 것. 예를 들면 높은 연봉의 앱 개발자 '오 과장'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 구독자 60만 명의 뷰티 유튜버 '화짜'는 악성댓글로 고통받았고,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온 '이슬'은 가정폭력 피해자다. 이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 우리의 문제다.
소설은 시놉시스 공개만으로 독자들의 후원을 받았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과 전자책 업체 리디의 프로젝트 '에디션 제로'를 통해 2021년 펀딩 목표 금액(150만 원)의 721% 모금을 달성했다. 당시 펀딩에 성공한 16편 중 가장 압도적인 호응을 받았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세밀한 짜임새나 미문 등 전통적 문학의 완성도를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흥미로운 설정과 자연스러운 플롯 등으로 떠난 사람, 남은 사람 모두의 마음을 다독이기 충분하다. 때론 전문가의 말보다 이야기의 힘이 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