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ESG'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얼마나 친환경적(E)이고 사회에 공헌(S)했으며 투명한 지배구조(G)를 갖고 있는지를 따진다. 그간 'ESG'는 기업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로 간주됐다. 소상인들이 모여 갖가지 물건을 파는 전통시장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는 곳이 있다. 200년 역사를 앞세운 인천 미추홀구 석바위시장이다.
설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16일 찾은 석바위시장 고객센터 1층에는 '나눔곳간'이라고 적혀 있는 냉장고가 설치돼 있었다. 이 냉장고는 홀몸 어르신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시장에서 마련했다. 상인들이 신선한 식자재와 직접 만든 반찬, 빵 등 먹거리를 채우면 봉사단체에서 매주 수요일 수거해 홀몸 어르신 40~50명에게 전달한다.
상인들은 자선 경매도 수시로 연다. 경매에는 220여 개 점포 가운데 60~70% 정도가 참여하는데, 판매하는 물건들을 정상가의 20~30% 수준으로 살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수익금은 전액 봉사단체에 기부한다. 지난해 10월 열린 자선 경매 때는 120만 원가량이 모였다. 정상가로 따지면 500만~600만 원 정도 되는 물건들을 기부한 셈이다. 김종철 석바위시장 상인회장은 "수많은 상인들이 팔다 남은 것이 아닌, 어느 분이 드셔도 만족할 수 있는 깨끗하고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들로 나눔곳간을 채워주고 있다"며 "자선 경매 수익금도 봉사단체를 통해 곳간에 기부된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환경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폐우산을 수거해 장바구니를 만든 뒤 시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장 고객센터 1층과 주차장 입구에 폐우산 수거함도 설치했다. 고현석 석바위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은 "폐우산 수거와 장바구니 제작은 봉사단체에서 맡고 있는데, 지금까지 장바구니 300개 정도가 만들어졌다"며 "시장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줄어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석바위시장은 1975년 개설돼 2006년 시설 현대화 사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석바위시장의 전신인 석암장 시절부터 따지면 역사가 200년을 넘는다. 석암주막거리로 불린 석암장은 조선 후기 개항 무렵 인천 지형을 묘사한 '인천부지도(1872년)' 등 여러 지도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석암장 명칭은 석바위시장 남쪽 석바위공원 자리에 있던 커다란 바위산을 석암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됐다.
석바위시장 인근에는 인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석바위사거리와 매달 23만 명이 오가는 인천지하철 2호선 석바위시장역이 있다. 그만큼 차량과 사람의 소통이 많은 곳이지만, 2000년대 중반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등장하면서 사람들 발길이 크게 줄었다. 시설 현대화 사업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외부 충격 탓에 상인들도 과감한 변신에 나서야 했다.
첫 번째 시도가 캐시백 혜택을 앞세운 멤버십 서비스 제도였다. 멤버십 서비스는 가게에서 결제한 금액의 1~2%를 시장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포인트로 되돌려주는 형태로 2017년 시작됐다. 시장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서비스는 2021년 지역화폐 '인천이음카드'와 결합하면서 회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캐시백 혜택도 최대 6%로 확대됐다. 현재 멤버십 회원은 1만3,200여 명, 참여 점포도 111곳으로 늘었다. 카드 결제가 어려운 노점 등을 제외하면 전체 점포의 80%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고현석 단장은 "과거에는 할인행사 정보를 알리려면 현수막이나 전단지를 붙여야 했지만 멤버십 서비스 도입 후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릴 수 있게 됐다"며 "시장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로 돌파했다. 인천이음카드와 연계한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는 2021년 11월 도입 직후 두 달간 매출이 6,0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첫해 46개 점포가 참여했지만, 현재는 80개 점포로 늘었다.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종류는 1,500개에 달한다. 시장에서 반경 3㎞ 이내는 직접 배달을, 그 이상 거리는 택배로 물건을 보내준다.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3억3,000만 원)의 3배인 10억 원이다.
김종철 상인회장은 "석바위시장에는 한 평 공간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국에 가맹점을 둔 '섹시한 떡볶이'와 '석바위토스트' 본점이 있는 먹거리가 풍부한 시장"이라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점포부터 젊은 상인들의 새로운 도전이 함께 공존하는 다양성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