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개입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당정이 금리 인하를 압박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고질병이 다시 꿈틀대는 모양새다. 이러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박근혜 정부의 “척하면 척” 발언 논란이 재연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3일 방송 인터뷰에서 향후 물가를 낙관하며 통화 긴축 정책의 부정적 여파를 강조했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서민들, 그리고 일반 경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수장의 발언인 만큼 한국은행에는 우회적 압박으로 비쳤을 수 있다.
여당에선 아예 노골적인 발언이 나온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은 어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더 이상의 금리 인상은 없어야 한다”고 공개 압박을 했다. 추가 금리 인상은 가계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줄도산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작년 11월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같은 당 윤창현 의원이 금리 인상을 성토하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정부의 열석발언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공조 필요성이 이전보다 높아진 건 사실이다. 경제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점점 더 정교한 정책 조합이 요구되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기 영합 정책에 중앙은행까지 동원된다면 브레이크는 고장 날 수밖에 없다. 정책 공조가 비교적 잘 이뤄진다는 미국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최근 "통화정책 독립성은 지속해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단기적으로 인기가 없는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 정부의 유혹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와 여당은 한은 독립성을 해치는 선을 넘는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한은도 “척하면 척” 발언에 금리 인하로 화답해 통화정책의 신뢰도가 크게 훼손된 전례를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