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까지 단 90초"...핵전쟁 위험에 '운명의 날' 가장 근접

입력
2023.0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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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시계' 3년 만에 10초 앞당겨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핵 위험 고조
기후 위기 겹치며 "전례 없는 위기" 우려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구 종말(둠스데이) 시계'의 초침이 자정 쪽으로 10초 더 다가갔다. 지구 종말(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90초로, 인류 역사상 지구 멸망이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는 뜻이다.

핵무기 위협부터 기후 위기까지 지구를 종말에 빠뜨릴 악재는 차고 넘치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전쟁 위험이 더 커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석탄 연료 사용이 늘면서 기후 위기 위험도 더 높아졌다.

운명의 날 시계가 10초 앞당겨진 이유는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인류 멸망 가능성을 '12시(자정)' 기준으로 표시하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가 종전보다 10초 더 빨라진 11시 58분 30초를 가리킨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불과 '90초'뿐이라는 건데, 이는 BAS가 처음 종말 시각을 발표한 1947년 이후 가장 '멸망'에 가까운 시간이다. BAS가 핵 위협과 기후 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해 온 종말 시계는 인류 위기 정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지표로 인정돼 왔다.

지구 종말 시계가 10초 빨라진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위협 때문이다. BAS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우연이나 의도, 오판에 의해 고조된 갈등이 얼마나 끔찍한 위험인지를 전 세계에 상기시켰다"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2035년까지 핵무기를 다섯 배로 늘릴 가능성과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 등도 핵 관련 위협에 포함됐다.

기후 변화에 맞선 인류의 노력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에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가 꺾이면서 주춤해지나 싶던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1년 재차 최고 수준으로 반등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확산과 러시아의 생물학적 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위험이 높아진 점도 재앙을 부추길 요인으로 꼽힌다. 레이첼 브론슨 BAS 회장은 "전례 없는 위험의 시대에 살고 있고, 지구 종말 시계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지도자들 2020년 시계 경고 무시한 대가"

지구 종말 시계는 1947년 자정 7분 전인 11시 53분으로 출발했다.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 1949년 처음 바뀌어 3분 전이 됐고, 미국과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에 나서는 등 국제 정세가 최악의 위기로 치달았던 1953년 자정 2분 전까지 임박했다. 미·소 양국이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서명한 1991년엔 17분 전까지 늦춰지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기후 변화와 북한 핵 위험 등이 종말의 변수로 등장했다. 2020년 종전 '2분 전'에서 '100초 전'으로 시간이 앞당겨진 것도 북핵 위협과 이란 핵 갈등이 중심에 있었다.

멸망이 임박한 시간에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더했다. BAS에 따르면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은 "코로나19와 이상 기후, 러시아의 터무니없는 전쟁의 결과로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며 "지도자들은 2020년 지구 종말 시계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전직 정계 원로로 구성된 '엘더스' 그룹 의장인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도 "인류는 벼랑 끝에 서 있다"며 "지도자들에게 위기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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