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보다 무서운 '난방비 폭탄'… '지옥고'의 힘겨운 겨울나기

입력
2023.01.25 21:25
2면
실온 12도 고시원, 현관도 언 옥탑방
"보일러는 언감생심, 껴입는 게 최선"
에너지 빈곤 생명과 직결, 대책 시급

“바닥 만져 봐. 냉골이나 다름없지. 전기장판 온기로 그나마 버티는 거야.”

‘시베리아발’ 북극 한파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 안팎까지 떨어진 25일, 서울 영등포구 고시원에 사는 A(72)씨는 빨간색 점퍼와 털모자로 중무장한 모습이었다. 방바닥은 얼음장 같았고, 실내에서도 허연 입김이 나올 정로도 공기는 차가웠다. 이틀째 이어진 기록적 한파는 ‘지옥고(반지하ㆍ옥탑방ㆍ고시원)’로 불리는 주거취약계층의 겨울나기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이들은 치솟은 난방비 부담 탓에 갖은 묘안을 짜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고시원은 거주자가 개별 공간의 보일러 온도를 조절할 수 없는 형태다. A씨 고시원도 25만 원 월세에 난방비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근 가스요금 인상으로 난방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 지 꽤 됐다. 그는 “요즘엔 난방을 하는지 마는지 분간 못할 정도”라고 했다. 고시원 복도에 놓인 온도계는 실내인데도 12도를 가리켰다. 다른 거주자들도 두꺼운 겉옷을 입고 사는 게 익숙한 듯했다.

급등한 가스요금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이들은 난방비 부담을 조금이라고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복을 두세 겹 껴입는 건 기본.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을 켜고 바람을 막을 실내 텐트를 설치하는 등 강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 광진구의 옥탑방에서 3년째 살고 있는 고모(28)씨에게도 올겨울은 유난히 혹독하다. 그는 겨울에도 바닥이 살짝 따뜻할 정도만 보일러를 가동한다. 두툼한 옷으로 지내는 게 유일한 방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전날부터 몰아친 한파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고씨는 “물이 얼어 현관문이 안 열리고, 수도관도 동파됐는지 싱크대가 작동하지 않아 드라이어로 녹여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끼고 아껴 보일러를 가동했건만 야속하게도 월 5만 원이던 난방비는 9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는 고심 끝에 2만6,000원짜리 ‘난방텐트(천으로 된 실내용 바람막이 텐트)’를 주문했다. 현재로선 텐트 안에서 전기장판을 켜는 것이 고씨에겐 최선책이다.

서울 중구의 반지하에 사는 대학생 김모(25)씨 역시 “이번 달 난방비가 평소 2배인 5만 원이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창문을 뽁뽁이(에어캡)로 무장하고 창틀에 문풍지를 꼼꼼히 발라도 추위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고 푸념했다. 김씨도 내복과 수면바지로 견디는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한파는 주거 취약계층의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현재 에너지 빈곤층에 적용되는 정책은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사실상 전부다. 이마저도 즉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데다, 지원액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다른 나라처럼 소득 대비 에너지비 지출 비중이 높은 사람들을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해 신속하게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