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격투 스포츠인 '무에타이'가 때아닌 명칭 갈등에 휩싸였다. 오는 5월 자국에서 32회 동남아시안게임(SEA)을 개최하는 캄보디아가 "무에타이는 캄보디아가 위치한 크메르 지역의 문화에서 유래했다"며 무에타이 종목명을 '쿤 크메르'(크메르의 무술)로 일방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무에타이 종주국 태국은 'SEA 보이콧'을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무리 개최국이라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스포츠명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 역시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무에타이 명칭을 둘러싼 양국의 문화전쟁은 이제 1라운드에 접어들었다.
25일 캄보디아 크메르타임스와 태국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캄보디아 SEA 준비위원회는 최근 "무에타이 경기명을 쿤 크메르로 바꿔 대회를 진행하겠다"고 SEA 참가국에 통보했다. 캄보디아 준비위는 이어 SEA 공식 홈페이지에도 무에타이를 쿤 크메르로 바꿔 등재했다.
태국은 즉각 SEA 보이콧을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짜른 와타나신 태국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쿤 크메르라는 종목을 승인한 적이 없다"며 "국제규정을 어기는 캄보디아 SEA에 우리 선수들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무에타이협회(IFMA)도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스테판 폭스 IFMA 사무총장은 "유도가 가라테가 아닌 것처럼 무에타이는 쿤 크메르가 아니다"며 "IFMA는 회원국들에 캄보디아 SEA 경기 불참을 권유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SEA 회원국들도 "경기명 변경은 주최국의 권리가 아니다"라며 태국 편을 들고 나섰다. 동남아 10개국이 참가하는 SEA의 경우, 개최국 재량으로 자국 문화와 관련된 특정 종목을 신규 편성하는 것만 용인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SEA에선 베트남 전통 무술인 '보비남'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기존 SEA에서 종목명이 주최국 재량으로 일방 변경된 사례는 없다.
끊이지 않는 반발에도 캄보디아의 강행 의지는 굳건하다. 왓 첨러운 사무총장은 전날 "쿤 크메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캄보디아의 영광"이라며 "우리는 캄보디아 국민들을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이 단순히 명칭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현재 캄보디아는 38년째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훈센 총리가 지배하고 있다. 훈센 총리는 오는 7월 예정된 총선에서 마지막 연임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후 그는 장남 훈 마넷 군 부사령관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계획이다.
동남아 외교가 관계자는 "캄보디아가 총선 직전 개최되는 SEA를 '자국민의 만족' 도구로 활용해, 선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나선 것 같다"며 "무에타이 명칭 갈등 역시 국가주의를 자극하려는, 스포츠의 정치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