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교 3학년이 치를 202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 일부 대학들이 자연계열 지원자에게 적용해온 수능 수학, 탐구 필수 응시 영역을 없애기로 했다. 문과생도 이과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다. 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지고 되레 혼란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과목이 대입 경쟁에서 절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문과 차별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진 자연계열에 지원하려면 수능에서 수학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는 과학을 응시해야 했다. 반면 인문계열은 필수 영역을 요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수학은 확률과 통계, 탐구는 사회를 주로 선택하는 문과생은 자연계열 지원이 불가능했지만, 이과생에겐 장벽이 없었다. 이는 이과생들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대거 입학하며 문과생들의 입지를 좁히는 부작용을 낳았다.
일부 대학들이 필수 영역을 없애는 건 기회의 형평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공계 교수들이 필수 영역을 배운 지원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만큼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이과의 침공에 문과가 속수무책이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수능 성적을 난이도와 평균점수를 고려해 보정한 표준점수로 산출하는 현행 방식이 문과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가령 확률과 통계 응시자는 원점수가 같은 미적분이나 기하 응시자보다 표준점수가 낮다. 소수점 아래 점수차로도 당락이 좌우될 만큼 경쟁이 치열한 대입에서 어떤 과목에 응시했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 다른 건 명백한 구조적 차별이다. 대학과 교육당국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문·이과 칸막이가 사라지도록 고교 체제와 대입 제도도 개선해 가야 한다.
문과에 비해 이과 취업문이 넓어지면서 대학은 이과 비중을 늘리고 고교에선 우수한 학생들이 문과를 외면하고 있다. 인재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학문의 균형 발전을 뒷받침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