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한국전쟁 직후 북한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 사살된 민간인 피해자 유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재차 인정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이기선)는 최근 충남지역과 경북 안동의 부역 혐의 희생자 유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사망자 8,000만 원 △배우자 4,000만 원 △부모와 자녀 800만 원 등을 위자료로 책정했다. 총액은 12억9,700여 만 원이다.
국군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이 점령했다가 국군이 수복한 지역의 민간인들을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재판 없이 집단 처형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2008년 이후 부역 혐의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유족들은 "군의 불법 학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아왔다. 이번 소송은 충남 지역과 안동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이 제기해 승소한 것이다.
국가 측은 소멸시효 도과(경과) 주장으로 맞섰다. 부역 혐의 희생자들의 사연이 2009년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도 유족들이 2021년 소송을 제기한 사실에 비춰보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났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그러나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①유족들이 과거사위 진실규명 결정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었고 ②진실규명 자체가 각각의 유족에게 통지되지 않았으니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과거사위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고 부역 혐의 관련 진실규명 결정 통지서를 송달받은 1명에 대해선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소멸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