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가족 간 호칭에 대한 고민이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부터 이어진 가족 호칭은 복잡하고, 남녀 가족에 대해 전혀 다른 표현을 쓴다는 점에서 성(性)비대칭적,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남편의 집안을 높여 부르는 말인 '댁'을 붙여 '시댁'이라고 부르지만, 부인의 집안은 '처가'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마음 편하고 성평등한 명절을 위해선 어떤 가족 호칭을 어떻게 불러보는 게 가능할까? 각종 정부 차원의 조사와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참고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8년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가족 호칭을 평등하게 만들어 부르자는 의견이 다수 확인됐다. 권익위가 홈페이지에 접수된 국민의견 8,254건을 분석한 결과, '도련님·서방님·아가씨 호칭을 계속 사용해야 하냐'는 물음에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여성은 93.6%, 남성은 56.8%였다. 물론, 남성의 43.2%는 "지금처럼 쓴다"고 답하는 등 성별에 따른 인식 차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말로 도련님·서방님·아가씨를 대체할 수 있을까. 부인의 동생은 '처남·처제'라고 부르는 만큼, 대칭적으로 '부남(夫男)·부제(夫弟)'로 부르자는 답변이 여성에겐 60.7%, 남성에겐 40.1%였다. 남성 응답자에겐 이름을 붙여 'OO씨'로 부르자는 응답이 53.3%(복수응답) 더 많았다. 여성은 54%가 'OO씨'라고 응답했다. '동생, 동생 분'이라는 호칭으로 바꾸자는 답은 여성 16%, 남성 27.2%였다.
권익위 조사에선 '시댁'에 대응하여 '처댁'이라는 말을 만들어 쓰자는 응답이 여성 91.8%, 남성 67.5%였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시댁이 등재돼 있지만, 처댁은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2019년 성별, 연령, 지역 대표성을 반영해 1,200명을 전화 설문조사했을 때는 '지금 우리가 쓰는 가족 호칭이 양성평등에 어긋나는가'라는 질문에 52.3%가 그렇다고 답했다. 44.8%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2.9%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들은 남편의 누나는 '형님' 혹은 '언니'로,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OO씨'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남성 응답자들에겐 부인의 남동생, 여동생을 'OO씨'라고 부르고 싶다는 답이 많았다. 시부모와 장인 장모는 '아버님, 아버지', '어머님, 어머니'로 부르고 싶다는 응답이 많았다.
정답은 없다. 국립국어원은 언어 예절의 지침서로 발간한 '표준 화법 해설'(1992년), '표준 언어 예절'(2011년)에서 전통적이고 비대칭적인 호칭을 '정답'처럼 제시했으나, 이후 연구를 거쳐 2019년 발간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에서는 "옳고 그름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소통하는 방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가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전통을 따라도 좋고, 자유로운 호칭을 써도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립국어원은 만약 시동생에게 '도련님'이라고 부르기가 불편하다면 'OO씨'로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자녀의 이름을 넣어서, 자녀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련님은 'OO(자녀 이름) 삼촌', 아가씨는 'OO 고모'로 부르는 식이다.
배우자의 형제자매의 배우자를 부를 때는 호칭을 빌려서 부르는 방법도 있다. 남편 여동생의 남편을 '서방님'으로 부르기가 어색하다면, 남편이 그 사람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인 '매부'를 빌려서 '매부님'같이 부르는 방식이다.
사전에 있는 말을 쓰고 싶다면, '시댁과 처댁' 대신 '시가와 처가'로 표현하여 대칭을 이루는 방법도 있다. 처댁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지만 '시가(媤家)'는 있다.
조부모를 부를 때 앞에 붙이는 친(親), 외(外)라는 표현을 고집할 필요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쓰는 방법도 있다. 모두 같은 자리에 있어 특별히 구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시조부모를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처조부모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라고 표현하는 건 "과거의 사회 문화에서 비롯된 언어의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