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 보장 위해" 성소수자 의료세미나에 몰린 시민들

입력
2023.0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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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술이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요? 잘못된 정보입니다. 의료진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아요."

17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별관 지하 1층. 80석 규모 세미나실이 시민들로 가득 찼다. 좌석이 부족해 병원 의료진이 여분의 의자를 부랴부랴 들였다.

영하의 날씨에 시민들을 불러모은 세미나의 주제는 '트랜스젠더의 성확정수술'. 산부인과·정신과·가정의학과·성형외과·의학교육과 등 전문의 10명으로 구성된 '성소수자 의료연구회(연구회)'가 주최한 행사다. 2021년부터 4차례 열렸는데, 코로나19 탓에 오프라인 세미나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참석자는 총 100명. 트랜스젠더와 지인, 부모, 친구, 의료진 등이 모였다. 보라색 후드를 입은 대학생부터 백발이 지긋한 노인까지 참석자의 나이대도 다양했다.

차별·혐오 탓 위협받는 트랜스젠더 건강권

전문의들이 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민 대상 세미나를 개최한 건 성확정 수술에 관한 공신력 있는 정보가 매우 부족해서다.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을 뜻한다. 약 60~70%는 성별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조치를 원한다. 호르몬 치료를 받았을 때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51.3%)는 아무 조치를 받지 않은 경우(75.2%)보다 낮다. 다만 의료 조치를 원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도 30~40% 정도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 탓에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최근엔 서울 대형병원들에서 성소수자 전문 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개인병원 중심의 불안정한 의료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을 통로도 없어서, 트랜스젠더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의료 정보를 모았다.

그 탓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3, 4년 이상 부작용에 시달려도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어 고통받는 사건이 있었다. (▶관련기사: 트랜스젠더 의료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일반 병원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트랜스젠더의 27.9%가 병원 등 의료기관 방문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연구회 소속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교수는 "의료진 간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시작해서 트랜스젠더 본인에게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오픈 세미나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가짜뉴스 검증, 의료진 간 진료 협업도

이날 세미나는 성기성형수술을 다뤘다. 황나현 고대안암병원 젠더클리닉 교수와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성소수자(LGBTQ+)센터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다양한 수술 방법과 부작용, 유의점을 실제 사례를 들어 전달하고, 각 수술에 대한 해외 최신 동향도 소개했다.

인터넷의 불확실한 정보를 검증하는 질의응답도 오갔다. 한 참가자가 "일부 병원에서는 '여성 성기성형수술을 할 때 질을 만드는 수술이 외부 모양만 만드는 것보다 쉽다'고 한다"고 하자, 김결희 교수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질을 만드는 수술은 성기성형수술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남성 성기성형수술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는 "태국과 국내 일부 병원에서 남성 성기성형수술을 하며 보형물 삽입을 권하는데, 국내 보형물은 합병증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아서 대학병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구회는 의료진과의 협력도 넓혀가고 있다. 의료진에게 연구회 동향을 전달하는 메일링 서비스에는 100여 명의 의사가 참여하고, 의료진들을 위한 SNS 단체 대화방도 개설했다.

SNS 대화방에서는 개별 환자 사례를 중심으로 여러 전문의들이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 성확정 수술은 성형외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다학제 지식이 필요한데, 이를 가르치는 정규 교육 과정이 없어서 의료진 간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 이 밖에 법적 성별 정정, 성확정수술 건강보험 적용 등에도 자문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박에디(36)씨는 "수술을 결정하기 전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없다"며 "세미나가 안전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니, 의료 조치로 고민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