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이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서 가뭄이 나타나다 보니, 이를 상징하는 장면도 과거 익숙했던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저수지 바닥 수준을 넘어 다양합니다.
봄가뭄의 끝 무렵, 메마른 강원도의 한 하천 바닥은 토양에 철 성분이 많은 탓에 공기와 만나 산화되면서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극심한 겨울가뭄이 한창 진행 중인 전북 임실의 한 저수지는 물 대신 하얀 눈이 바닥을 뒤덮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부지방은 반 세기 내 가장 긴 가뭄을 겪었습니다. 전국 단위의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4년 이후 기상가뭄 일 수가 227.3일로 가장 길었고, 전국 평균 기상가뭄 일 수도 역대 두 번째로 길었습니다.
기상가뭄이란 표준강수지수가 '-1' 이하일 때를 말하는데, 보통 6개월 누적강수량이 평년의 65%에 못 미칠 경우 표준강수지수는 -1 이하로 떨어집니다. 즉, 평년 강수량의 65%에 못 미치는 날이 지난해 그만큼 많았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2월 하순 전남과 경남에서 시작된 가뭄이 4월 중순 경엔 경북 지역까지 넓어졌고 4월 하순엔 충북과 강원에서도 기상가뭄이 발생했습니다. 겨울과 봄 강수량이 적었던 탓에 5월 초순부터는 우리나라 전역이 기상가뭄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국토 면적이 그리 넓은 편도 아닌데,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기후는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듯합니다. 기상청의 기록을 보면 지난해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여름철 강수량이 두 배가량 차이가 납니다. 지난해 6~8월 중부지방 강수량은 941.3㎜로 평년(759.6㎜)보다 많았고 남부지방은 483.3㎜로 평년(704㎜)을 크게 밑돌았습니다. 연중 기상가뭄 일 수로 따졌을 때 중부지방이 81.7일로 남부(227.3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최악의 기상가뭄이 찾아온 것을 비롯해, 2004년에는 100년 만의 기록적 폭설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경칩 날 내렸고, 2018년 여름, 111년 만에 국내 공식 최고 기온 '41도'가 기록됐습니다. 갈수록 기후 변동성이 심해지다 보니, '마른장마'나 '겨울가뭄'이라는 표현도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변동성은 기상현상을 기록한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뭄처럼 과거 일정한 패턴으로 기록돼 온 현상들이 이제는 예측불허의 다양한 장면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구조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