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행인 한 사람 만나기 힘든 시골길에 ‘클럽'이 줄지어 서 있다. '파라다이스 클럽' '엘비스 클럽' '팝 클럽' 등등. 기와지붕 얹은 오래된 단층 건물에 클럽이라니, 한마디로 '언밸런스'한 풍경이다. 지난 16일 경기 파주시의 주한 미군기지 ‘캠프 하우즈(Camp Howze)’ 앞 기지촌을 찾았다. 찾는 이도 기다리는 이도 없는 클럽 거리는 썰렁하기만 했다. 2005년 기지가 폐쇄된 이후 18년간 기지촌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캠프 하우즈 폐쇄는 경기 북부 등 전국에 산재한 미군 기지들을 평택 기지로 통합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의 일환이었다. 2007년 폐쇄 2년 만에 우리 정부에 기지 부지의 반환 절차가 완료됐지만, 그로부터 16년이 지나도록 공여지는 물론 주변 지역에 대한 개발이 미뤄졌다. 오랜 시간 개발 계획이 잇따라 연기되고 취소된 끝에 최근에야 첫 삽을 뜨고 있는 중이다.
“낮에도 미군들이 드나드는 클럽 불빛에 여기는 밤낮없는 ‘별천지’였지.” 일흔 평생 이 동네에서만 살아온 조영애(71)씨가 회상했다. 그러나 화려한 추억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연탄 보일러조차 제대로 못해 난로를 때는 집이 많을 정도”로 낙후됐다. 개발되면 ‘어차피 헐릴 집’이라 생각해 전혀 손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캠프 하우즈 개발은 진행이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기존 사업자가 분담금 지급을 미루면서 퇴출됐고, 소송전까지 이어지며 최초 완공 목표인 2015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조씨는 “(개발을) 한다, 안 한다 확실하게 해 줬더라면 시간이 걸려도 덜 힘들었을 것”이라며 “10년을 기다렸는데 몇 년 더 못 기다리겠나, 될지 안될지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파주시청이 직접 공여지 개발사업 시행자로 공사를 재개했지만, 기지촌을 포함한 주변 지역 개발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캠프 하우즈는 나은 경우다. 역시 파주에 있는 캠프 개리오웬과 자이언트는 2번, 하남시에 있는 캠프 콜번은 벌써 3번이나 사업자 유치에 실패해 본격적인 행정절차에도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지리적 여건과 높은 비용 문제 등으로 사업성이 높지 않기 때문인데, 상당수 미군기지 터가 여기 해당한다.
캠프 하우즈처럼 반환된 지 10년이 훌쩍 넘도록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미군기지는 전국적으로 12곳, 면적으로 따지면 100만 평에 육박한다. 여기에 기지촌과 같은 주변 지역까지 포함할 경우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강원 춘천시에 있던 캠프 페이지와 캠프 콜번(하남)을 제외하면 모두 경기 북부에 위치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군 공여지는 지자체가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매입하고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데, 대부분 재정 형편이 열악하다 보니 부지 매입 과정에서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기 의정부시의 캠프 라과디아의 경우 2007년 반환 절차가 마무리됐지만, 지자체가 부지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2015년에야 매입이 완료됐다.
부지 매입이 해결되더라도 낮은 사업성에 가로막히고 만다.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발전종합계획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 47조2,324억 원 중 국비가 4조2,546억 원, 지방비는 5조8,680억 원으로 둘을 합해도 전체의 22%에 불과하다. 남은 예산 78%는 민간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구조이므로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발 추진이 어렵다.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역에 인접해 사업성이 높았던 캠프 홀링워터 부지의 경우 반환 5년 만에 백화점으로 탈바꿈했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그 외 대다수 부지가 주위 환경이 열악해 지자체 선에서 사업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고, 그에 따라 개발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의정부 캠프 시어즈 사례처럼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토양 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개발에 급제동이 걸리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일각에서는 종합발전계획 수립 초창기부터 공여지 개발을 국가주도 사업으로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